"게으른 책 읽기"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9.07.17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2009
  2. 2009.07.17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2006
  3. 2009.07.17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2009
  4. 2009.07.03 담대한 희망, 버락 오바마, 2007
  5. 2009.07.03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2008
  6. 2009.07.02 예수전, 김규항, 돌베개, 2009
  7. 2009.06.22 09. 6. 18. 도서 구입 목록
  8. 2009.05.29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9. 2009.02.19 아웃라이어 OUTLIERS, 말콤 그랜드웰, 김영사 (1)
  10. 2008.10.17 08년 10월 17일, 도서구입 목록
  11. 2008.10.05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12. 2008.09.23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13. 2008.09.08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레너드 위벌리 지음, 뜨인돌
  14. 2008.08.18 Curious 시리즈 15, 그리스, 클라이브 레오나드 로린스 저
  15. 2008.08.08 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저
  16. 2008.08.06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2)
  17. 2008.08.04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The Greeks, H. D. F 키토 지음
  18. 2008.08.04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피에르 그리말 저 (2)
  19. 2008.07.30 병원장은 있어도 경영자는 없다, 박개성 저
  20. 2008.07.29 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家의 신화
  21. 2008.07.27 개념어 사전, 남경태 저
  22. 2008.07.20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 정승일 좌담
  23. 2008.07.20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저
  24. 2008.07.20 게으른 책 읽기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2009

2009.07.17 03:19

The Return of Depression Economics and The Crisis of 2008, Paul Krugman, 2009


사회주의의 붕괴로 자본주의는 승리하였다.

p.24
1917년 이래 처음으로 우리는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이 마지못해 택한 방편이 아닌 근본적 원리로 간주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시장 체제의 불쾌한 측면들, 다시 말해 불평등과 실업, 불공정 등은 일생의 일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지금 자신의 성공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그럴듯한 대안이 없다는 점 때문에도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 또 다른 이데올로기, 또 다른 꿈들이 등장할 것이다. 만약 현재의 경제위기가 장기간 지속되고 심화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빨리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현재로서는 자본주의가 아무런 도전도 받지 않고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대공황 이후 비즈니스 사이클을 길들였으며 이제는 불황을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과, 1980년대 라틴마에리카의 위기, 19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과, 1990년대 태국에서 시작된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모두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크루그먼은 이들 경제 위기를 하나씩 분석하면서 현재 경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p.225
세계 경제는 공황에 빠지지 않았다. 현재의 위기의 규모가 크긴 하지만 세계경제는 십중팔구 공황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공황 자체는 재현되지 않겠지만 (1930년대 이후로 잊고 있던) 불황 경제학이 놀라운 컴백을 했다. 약 15년 전만 해도 환투기꾼들의 장난이 한 국가를 고통스러운 경기후퇴로 밀어 넣는다거나, 주요 선진국들의 소비가 미진해 공장이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고들 생각했다. 현대국가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취약성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불황의 시대에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지 이야기 해준다.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2006

2009.07.17 03:18

You’re Too Kind, Richard Stengel, 2002


아부해서 손해본 적이 있는가. 아부하고 있는 것을 들키더라도 상대방이 아부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더구나 아부에는 돈도 들지 않는다. 불라불라불라~ 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인원 등 동물의 세계의 아부에서 시작하여, 이집트 고대문명, 구약성서, 그리스 • 로마의 철학자들 및 플루타르크, 중세의 음유시인들, 르네상스시대 궁정 처세서인 카스티글리오네의 『조신론』, 그리고 마키아벨리, 몽테뉴, 베이컨, 체스터필드, 그리고 미국인들의 아부,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와 에드워드 존스의 『환심사기(Ingratiation)』, 마지막으로 현대의 일상이 된 아부 등을 순서대로 짚어본 책.
저자는 이들의 아부에 대한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p. 25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미덥게 생각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만큼 아부는 더욱 값지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대인들은 칭찬에 목말라 있다.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고서야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될 뿐 아니라, 파편화된 정체성을 회복하게 된다. 게다가 칭찬처럼 사람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아부를 하고, 상대방이 아부를 할 때도 적당히 눈감아준다. 다른 사람을 칭찬해줄 때나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을 때나 진심인 척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서투르게 연기할 뿐이다. 우리는 예전만큼 아부를 세련되게 하지 못하고 잘 받지도 못한다. 자연스러운 아부의 기술을 상당 부분 놓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외 끄적끄적..


마음을 얻기 위해 상대방에게 자신이 베푼 것을 절대로 환기시키지 말고, 그 사람이 베풀어준 고마움을 회상하는 게 더 중요하다.  – 몽테뉴, p. 237

‘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행하라’는 자세처럼 자신을 만족스럽게 해주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  – 체스터필드, p. 248

남성이 실제보다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여성이 실제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오해 덕분에 그들은 마음이 더욱 편해지고, 다른 사람도 전혀 해를 입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애써 그들에게 진실을 깨닫게 해서 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그들을 그냥 친구로 지낼 것이다.  – 체스터필드, p. 254

사람들 앞에서 하는 행동은 언제나 그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 워싱턴, p. 270

알 카포네, 쌍권총의 사나이 크라우리, 더치 슐츠, 다른 수감자들도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중략) 비난은 무익할 뿐이다. 비난받는 사람은 방어적이 되고 대개 정당화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비난은 위험스러울 따름이다. 비난받는 사람은 소중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결국 반항심을 갖게 된다.  – 카네기, p. 320

어떤 일에서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고, 논쟁하지 말며, 모든 사람을 치켜세우고, 성실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계속 미소를 지어라.  – 카네기, p. 324

이름을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부르라. 그것 자체로 상대방에게 매우 섬세하고 효율적인 칭찬이 된다. 반대로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잘못 부르면 낭패를 당하게 된다.  – 카네기, p. 333

상대가 잘하는 점을 칭찬하지 말고, 잘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을 칭찬하라.  – 존스, p. 355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존경받고 호감을 사면서 칭송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멋진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몸을 낮추는 태도이다. 윗사람이 스스로 자세를 낮추면 아랫사람에게 존경과 신망을 얻는다.    p. 370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2009

2009.07.17 03:17


유시민은 얼마간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을 달린다. 물론 그의 튀는 언행으로 부정적인 평판이 주를 이루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대체로 일관성이 있으며, 퍽 논리가 정연하다. 누가 그랬던가. 논쟁으로 유시민을 이길 자는 없다고. 물론 토론에서 이기는 것이 옳음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유시민이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고, 바뀐 정부가 보수적인 실체를 드러내면서 지지도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지난 정권에 대한 향수가 진해지는 시점에서 유시민은 헌법과 민주주의, 그리고 지난 정권에 대한 소소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들고 나타났다.

p.21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민주공화국이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의회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질서를 담은 첫 헌법을 공포한 순간부터 그랬다. (중략) 제헌의회는 유럽과 아메리카 민주주의 선진국 헌법을 큰 틀에서 ‘복제’하면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한다는 등 특수한 한국적 현실에 대한 배려를 가미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렇게 해서 인류가 20세기에 도달한 최고의 문명 수준까지 단숨에 올라설 수 있었다.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조항 하나하나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들어 있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 복지와 사회적 안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오랜 꿈을 담은 헌법 조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싸우고 노력하고 헌신한 동서고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쓰였다. 제헌헌법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중략)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독립지사들의 희생과 헌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60여 년 동안 꾸준히 그 비용을 ‘후불’했다.


이런 의미에서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유시민의 표현은 꽤 적절하다. 선진국 수준의 헌법을 갖고 있음에도 헌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 비용을 아직 충분히 치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국민이 아니라 권력자라는 사실이다. ‘법치주의’는 지배자가 자신의 마음대로 백성을 통치하던 시절에 반해 법(결국은 헌법)에 의한 통치를 일컫는 것이지, 국민들에게 엄격한 법집행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최상위 법인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제21조). 교통체증을 이유로, 혹은 폭력시위, 정치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주관적인 판단으로 헌법을 제한하는 행위는 ‘법치주의’를 표방한 대한민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여러 자유와 권리가 국가에 의해 침해 받는 것을 괘념치 않는 국민정서가 존재하는 한 온전한 민주주의는 실천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땅에 민주주의가 필요한가’에 묻는다면, ‘정말 그렇다’라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경제발전이 더욱 필요하다’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p. 68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한 가지다.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 진보는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싸운다. 예컨대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같은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불평등을 조장하는 제도와 문화를 변혁하려고 한다. (중략) 보수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불가피한 자연적 질서로 간주하고 그것을 지키려 한다. 어떤 질서든 상관없다. 전제군주제, 개발독재, 천황제, 심지어는 공산당 일당독재조차도 보수가 지키려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보수는 진보와 달리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철학과 견해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익이 일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단결한다. 보수의 경쟁력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중심으로 단일한 위계질서를 수립하는 줄서기 문화와 냉철한 이해타산 능력이다. 그래서 보수가 망할 때는 걷잘을 수 없는 부패로 망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보수의 힘은 일반적으로 진보를 능가한다. 보수의 무능과 부패와 나태함이 민중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에만 진보가 승리를 거두며, 그 진보의 승리는 보통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진보는 ‘당위’를 추구하고 보수는 ‘존재’를 추종한다”는 유시민의 명제에 동감한다. 이를 편파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역사의 진보를 실천하려는 자들이 진보주의자이고, 현상태를 수용하고 지키려는 자들이 보수주의자이니까. 보수주의자들의 보수성을 비난하는 것은 당치 않은 일이다. 언제나 보수주의자는 있기 마련이고, 보수주의 자체가 악은 아니다. 다만 헌법을 무시하는 행위는 모두 비난받을 필요가 있다. 아니 더 비난받아야 한다. 우린 권력자의 몰상식에 너무 관대하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책 표지에도 적어두었듯 헌법에 대한 가벼운 에세이다. 그래도 제목이 뿜어내고 있는 강한 포스만큼 학문적인 배경이 뒷받침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유시민은 학자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지식소매상’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 수준에는 이런 편한 에세이가 더 상품성이 있기도 할 것이다. 유시민은 역시 naming을 잘했고, 이 책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제목에 걸맞는 깊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어 못내 아쉽다.


 

밑줄 그으며 책읽기

p. 32
높은 지위나 많은 재산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삶을 설계할 때 널리 퍼진 고정관념을 무작정 추종하거나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느끼는 행복의 밀도와 지속 가능성이다. 가치판단의 무게중심을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두는 사람만이 농밀한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맛볼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p. 44
이러한 진화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지도자를 추종하라는 명령이 우리 몸 유전자와 뇌세포 안에 필수적인 행동 매뉴얼로 각인되었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규제하는 행동 매뉴얼의 집합을 ‘문화유전자’라고 부른다. (중략) 주권재민 사상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아직 이 사상에 진화적 적응을 하지 못했다.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은 유전자에 새겨진 매뉴얼이 아니라 학습과 사회화를 통해 대뇌피질에 기록된 최신 정보들이다. 내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 귀한 존재이며 이 존엄성을 구현하려면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 내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권력은 정당성이 없다는 가치판단, 내가 국가의 것이 아니라 국가가 내 것이라는 사상은 모두 본능이 아닌 지성적 사유의 산물이다. 이것은 국가권력과 국가 지도자를 여전히 두려움과 맹목적 추종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진화적 본능과 충돌하는 것이다.

p. 59
나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 헌법 제1조는 ‘존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진화하는 중이며, 그 진화는 때로 매우 폭력적인 증상을 동반했다.

p. 83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인간 그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사마천이 ‘사기열전’에 기록한 3,000년 전 인간의 모습과 현대인의 모습에서 뚜렷한 생물학적 진화의 증거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도구와 제도가 진화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제도는 호모사피엔스가 수십만 년 걸려 이룩한 문명 진화의 산물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만든 전체주의 체제는 이 진화의 방향을 일시적으로 거슬러 갔던 문명적 퇴행이다.

p. 85
진보는 흔히 경쟁 그 자체를 혐오한다. (중략) 하지만 내 생각에 경쟁 그 자체는 혐오나 숭배의 대상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경쟁은 그저 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일 뿐이다.

p. 95
OECD 주요 회원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국가재정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나든다. 국가재정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수준이다. 우리는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재정 비중이 30% 남짓이고, 국가재정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 10여 년 동안 크게 늘어났지만, 여전히 30%에 불과하다.

p. 98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 선 주요한 경쟁 상대는 거의 모두 자유를 기본 질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이며 압도적으로 우월한 복지 제도를 보유한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자기 나라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 거기서 사는 모든 어른들에게 각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나라는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뒤처지게 되어 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문제가 적다. 그러나 가난한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다.

p. 204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법률이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모든 것이 허용된다”. 권위주위 사회에서는 “법률이 명시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모든 것이 금지된다”. 독재 국가에서는 “법률이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은 금지되며 법률이 허용한 것도 금지된다”.

p. 226
맹자의 3단론. 측은지심(긍휼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잘못을 깨달았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사양지심(남을 공경하고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하려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

담대한 희망, 버락 오바마, 2007

2009.07.03 00:17

The Audacity of Hope, Barack Obama, 2006


버락 오바마는 근래 보기 드문 슈퍼스타 정치인으로 전세계적인 환호 속에서 이미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성장배경과 이력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자칫 식상할 수 있으며, 이 책은 그의 자서전도 아니다. 그러므로 의례적인 얘기는 과감히 생략하고..

“담대한 희망”은 정치인이 큰 선거를 앞두고 내놓는 그런 책이다. 거물급 정치인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이나 이들의 자전적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곤 하며, 나도 여러 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대개는 어려운 성장기에도 그들은 범상치 않았으며 주경야독으로 노력하고, 또 남다른 능력과 불굴의 의지로 성공궤도에 올랐다는 정도로 모두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대권 출마 4개월 전에 펴낸 “담대한 희망”에서 버락 오바마는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이미 이전에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Dreams from My Father을 출간하기는 했다.) 대신에 오바마는 이 책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가치 체계, 헌법, 정치, 기회, 신앙, 인종, 국경 너머의 세계, 가족이라는 아홉 가지 주제에 대해서 자신의 견해를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키며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이런 ‘따분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점, 다시 말해 미국의 유권자들이 후보의 성장배경이나 성공스토리 뿐 아니라 그의 이상과 가치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바마는 실제로 글을 쓸 줄 아는, 그것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감동과 진실을 담아 쓸 수 있는 희귀한 정치인이다.’ 실제로 그의 문장은 격정적이기보다는 따뜻하고, 거창하기보다는 소박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격조가 높다. 이러한 그의 필력은 오바마 특유의 감동적인 연설과 더불어 그를 다른 정치인과 다르게 보이도록 도와주는 경쟁력일 것이다.

모든 챕터가 흥미진진했지만 내가 가장 흥분했던 주제는 ‘헌법’이었다. 위정자가 헌법의 정신을 따르고 수호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 같지만, 우리 정치 현실을 돌아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과연 헌법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되는지 한숨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는 헌법을 읽어보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는지 의심스럽기 조차하다. 법조계 출신도 매한가지이지만.

p. 140
헌법의 기본 틀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장래 문제를 논의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일이다. 빈틈없이 짜인 헌법의 여러 장치들, 다시 말해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 연방제 원칙, 권리 장전 등은 모두 우리를 대화의 장으로 모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견해를 현실적인 여건에 비춰 시험해 보고, 자신의 관점에 동의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며, 의견이 합치되는 사람들과 새로 제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토론형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권한이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입법 과정에서 우리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가능성을 받아들여 때때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입법 과정은 우리 자신의 동기와 이해관계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만들면서 우리의 개별적, 집단적 판단이 정당하면서도 동시에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역사적 기록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헌법 제정자들이 똑같이 가졌던 한 가지 열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일체의 절대적 권능을 배격하는 것이었다. 군주, 신권 정치가, 장군, 과두 정치 집정자, 독재자나 다수파, 또는 그 밖의 어떤 사람도 절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p. 142
민주적 토의를 하려면 이상적인 목표나 공동선의 추구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결국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람들이 서로 목청껏 소리치면서 상대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만 보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아이디어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함께 열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시장에서는 ‘심사숙고와 신중함’ 대신 ‘당파 간의 알력과 충돌’이 위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토론과 경쟁을 통해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생각을 바꾸어 결국에 가서는 충실하고 공정한 합의에 도달하게 한다.


얘기를 바꿔서 세금 문제.

p. 270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누적시킨 채무는 대부분 감세 조치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동안 쌓인 채무의 47.4퍼센트는 감세 조치를 통해 상위 5퍼센트 소득 계층에게 돌아갔다. 상위 1퍼센트에 돌아간 감세 혜택은 무려 이런 채무액의 36.7퍼센트에 이른다. 연간 160만 달러 이상의 소득으로 최상위 0.1퍼센트에 속하는 부자들에게도 감세 혜택으로 이런 누적 채무액의 15퍼센트가 돌아갔다.

오바마는 진보주의자이다. 공공연히 증세를 주장한 후보가 감세안을 강력히 내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오랜 공화당 집권 동안 꾸준히 펼쳐진 감세 정책이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러일으켰음을 국민들이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듭 말하지만, MB 정권과 오바마 정권의 정책이 닮았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감세와 증세, 작은 정부와 큰 정부는 모든 면에서 구별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보수세력의 파상공격을 막아내고 기대만큼이나 성공적인 진보정권으로 기억될지 우리는 조용히 지켜볼 지어다.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2008

2009.07.03 00:10

The Conscience of a Liberal, Paul Krugman, 2007


"미래를 말하다"라는 번역은 참으로 구차하고 구리다.

지난 겨울 전문의 시험 준비 막바지에 덥석 집어들고 공부시간 아끼려고 하루에 한 챕터씩 읽었던 책. 경제서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쉬운 문체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절대선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반박한 놀라운 책. 앨런 그린스펀으로 무작정 시작된 나의 경제공부는 폴 크루그먼에서 비로소 내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의 중산층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 행정부 정책의 일환인 전시 임금통제를 통해 몇 년이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만들어졌다. 길었던 도금시대(1870년~1930년대)가 경제적 평등의 시대로 접어든 것은 자본주의의 자연스런 성숙과정이 아니라 루스벨트 행정부와 뉴딜정책에 의해 강제적이고 급진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압축(Great compression)이라 부른다. 그리고 레이건에서 시작되어 부시 부자에 이르는 30년의 보수주의 혁명(conservative movement)을 거치면서 2005년 미국의 소득분배는 1920년대 수준으로 회귀하였다.

1920년대 미국의 소득세 상한선은 24%, 상속세 상한선은 20%였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정책과 전후의 복구비용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소득세 상한을 91%까지, 상속세 상한을 77%까지 올렸다. 부자들은 뉴딜정책을 통해 실제로 그들의 소득 상당 부분을, 어쩌면 거의 전부를 세금으로 빼앗겼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자들에게 적이었으며, 보수주의자들의 악랄한 공격을 받았다. 루스벨트가 선거를 앞두고 빨갱이니, 우리의 재산을 모두 앗아 간다느니, 가진자들이 투자를 꺼리게 되어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다느니 공격을 받았던 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허구헌날 듣는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과연 루스벨트 행정부의 세금폭탄 정책 뒤에 미국 경제는 몰락하였는지, 또 1920년대 보수 언론과 공화당의 주장처럼 루스벨트가 정말 빨갱이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항상 진실을 말해 준다. 루스벨트 20년의 집권 뒤에 시대를 호령했던 거부들은 몰락하였으며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건강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전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대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뉴딜정책의 본질이라고 크루그먼은 말한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뉴딜정책이라 지칭하며 전면적인 감세 정책과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땅의 위정자들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그지 없다. 더구나 한국판 뉴딜정책을 홍보하면서 MB정권과 오바마 정부가 닮았다느니 떠들어 대는 보수 언론들을 보면 황당한 지경이다.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진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말은 마치 2009년 대한민국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

노벨상 수상 이후 폴 크루그먼의 영향력은 크게 신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09년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를 선택했다. 공화당 후보 진영에서 오바마를 가르켜 빨갱이니 테러리스트니 했던 것 역시 대한민국의 선거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놀랍게도 감세를 주장하는 공화당을 버리고 증세를 주창하는 민주당을 선택했다. 멀리 떨어진 저 대륙에서 진보주의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는지 지켜볼 때이다.

예수전, 김규항, 돌베개, 2009

2009.07.02 12:47

문화와 문명에 대한 여러 서적을 읽을수록 성경과 예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종교적이기 보다 지적 호기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서점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바로 이 얇은 책 “예수전”이다. 김규항은 마르코복음 강독의 형식을 통해 2000년 전 실존했던 인간 예수의 생각과 행동,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준다.

예수는 그 시절 가난한 자들을 이끌었던 선지자이자 지도자였다. 부자들과 기득세력을 비판하고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성전에 들어가 횡포를 놓기도 하였다. 이 불온한 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선동하였던 것은 불과 3년. 당시 집권 세력은 예수를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자로 판단하고 사형에 처하였다.

확실한 것은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가 성립된 것은 예수 사후의 일이다. 당시 유대사회는 종교가 곧 정치였으며, 율법이 그대로 사회질서였다. 예수는 사회 빈민층을 이끌며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였으며, 기득권층은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하였다.

예수는 율법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하였으나 지금의 교회는 성경에 목을 멘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고 설명하였으나, 교회는 그 시절 유대교 만큼이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는 예수가 아닌 루터나 칼뱅의 교회라야 더 맞을 것이다.

흥미롭게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종교였다는 별 대수롭지 않은 사실을 되뇌이게 된다.



밑줄 그으며 책읽기

p. 38
“측은히 여기시고”는 그리스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인데 ‘창자,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이다. 한국어에는 기막히게도 같은 말이 있다. ‘애끊다’는 말이다. ‘애’는 바로 ‘창자, 내장’을 뜻하고, ‘애끊다’는 말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말이다.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정상적인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애끊지는 않는다. 우리가 애끊는 순간은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제 아이나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면할 때다.
그런데 예수는 난생 처음 만난 나병환자에게 애끊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p. 50
사람은 아무하고나 밥을 먹지 않는다. 식사 약속엔 엄격한 사회적 맥락이 들어 있다. 식사에 초대하는 건 그 사람을 내 사회적 관계와 질서 속에 들이는 일이다. 이를테면 한 아버지가 마땅치 않아하던 아들의 여자 친구를 식사에 초대했다면 그건 단지 함께 끼니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둘의 교제를 허락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물며 고대사회,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에 속했다. 누구와 먹는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 따위는 곧 그 사람의 신분과 명예를 표현했다. 그래서 점잖은 사람들은 절대 죄인들과 식사하지 않았다. 그들과 식사하는 건 자신을 더럽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세리나 죄인들과 가까이, 아니 보란 듯이 어울려 식사를 했다.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담소할 때 예수는 죄인들과 어울려 유쾌하고 떠들썩한 식사를 했다. 예수는 식탁 교제의 법칙을 해체함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한 번 선언한다. ‘하느님은 고상하고 훌륭하다 칭송받는 사람들만 가까이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천대받고 멸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명령이라 주장되는 율법에 의해 삶이 옥죄어진 사람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분이다.’

p. 65
“열혈당원”은 로마에 대해 무장 항쟁을 벌이던 ‘젤롯당’의 일원을 말한다. 그들은 나중에 벌어진 유다전쟁의 주역이기도 하다. 아직 전쟁을 일으킬 만큼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예수의 제자 가운데 젤롯당원이 있었다는 사실, 말하자면 예수가 젤롯당원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물론 그것만 갖고 예수와 그의 운동이 폭력적 노선을 걸었다고 주장할 순 없지만, 예수와 그의 하느님 나라 운동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한없이 유순하기만 한 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런 오해들은 ‘평화’에 대한 오해와 관련되어 있다. 평화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어떤 무작정하게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가 아니다. 평화란 ‘온 세상이 잃어버린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유지되는 조용하고 온순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악랄한 형태의 폭력이다. 평화는 바로 그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인간적인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론 평화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때론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사나울 수 있다. “열혈당원 시몬”은 예수와 하느님 나라 운동에 ‘당연히’ 그런 소란스러움과 사나움이 포함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p. 87
예수의 정치성에 대한 어이없을 만큼 어리석은 해석들은 생각보다 많다. 예수가 젤롯당 같은 이미 존재하는 변혁적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의 활동에 정치적 변혁이 빠져 있다고 말하거나, 정치를 배제한 어떤 것(영원한 진리, 사랑 등으로 표현되는)을 목표로 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주요한 예다. 예수에게 정치적인 해방은 굳이 강조할 이유조차 없는, 혹은 배제하려 해도 배제할 도리가 없는 매우 기초적이고 당연한 문제였다. 예수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 죄인, 여성, 아이들이 사람 취급 받는 세상을 구름 위에, 관념 속에 건설하려 한 게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안에서, 그 현실을 변화시킴으로써 만들려고 했다. 그 변화는 원하든 원치 않든 당연히 정치적 갈등과 불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여자가 남자와 대등하게 사람 노릇 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가부장 권력이 가만있을 리가 없고 사람 취급 못 받는 사람들이 인권을 확보하고 버젓이 똑같이 행동하는 데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유지되는 기존의 지배체제가 그걸 용납할 리 없다. 예수의 변혁은 당연히 정치적인 변혁을 포함했다. 그것을 궁극의 목표로 하지 않았을 뿐.


p. 109
이 에피소드는 이른바 ‘나눔’에 대한 우리의 알량하고 가식적인 생각에 일침을 가한다. 우리는 대개 나눔을 나와 내 식구가 배불리 먹고 남는 걸로 불쌍한 사람을 돕는 적선이나 자선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을 돕기 위해선 먼저 내가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횡행한다. 부모들은 제 아이가 부자가 되길 바라는 욕망을 ‘부자가 되어 불쌍한 사람을 도우라’는 식으로 우회하여 표현하곤 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의 적선이나 자선이 금세 굶어 죽을 사람을 살리거나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긴급한 조처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진정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불쌍한 사람’과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어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쇼가 아니라, 누구든 제 능력과 개성에 맞추어 정직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나눔은 자연도 자원도 돈도 식량도 집도 땅도 모두 하느님의 것임을 깨닫는 것이며, 하느님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고루 나누어 쓰라고 한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사적으로 소유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할 때 비로소 모두 함께 풍요롭고 만족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p. 180
예수가 성전 지배세력의 비리나 부정들을 고치고 개혁함으로써 성전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그런 ‘난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은 성전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에 대한 ‘부인’이다. 예수는 그 성전이 ‘문제 있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 선언은 성전 지배세력을 향한 공격이자 성전 체제의 권위에 눌려 침묵하는 인민들을 일깨우는 퍼포먼스였다.
예수의 태도는 우선 오늘날의 교회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깨우침을 준다.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가 ‘그래도 성전인데’하며 침묵하던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쳤듯이 우리는 ‘그래도 교회인데’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성전이 단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지배체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에서, 예수의 태도를 전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해 보아야만 한다. 예수는 억압의 사회체제가 피억압자들의 비굴과 무기력에 힘입어 유지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앞서 말했듯 인민들은 성전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저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다”, “하느님은 저곳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엔 예의 순진함 외에 ‘세상이 다 그런 거지’하는 비굴과 무기력이 들어 있다.


p. 224
하느님이 억압받고 고통받는 인민들, 즉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에게 더 주목한다는 생각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달랐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많은 걸 가진 사람, 큰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주목받는다고 생각했다. 알다시피 그런 생각은 ‘예수의 종교’가 생긴 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든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의 한 평범한 부모를 떠올려 보자. 그 부모는 여러 자식 중에 안락하게 살며 남에게서 충분히 존중받는 자식에게 마음이 쓰이겠는가, 어렵게 살며 형제에게서조차 무시당하는 자식에게 마음이 쓰이겠는가. (중략) 하물며 온 인류의 아비인 하느님이야.
하느님이 가진 게 많은 사람, 큰 부와 명예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하며 그들을 축복한다는 생각은 실은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으로 짜인 세상의 구조와 가치관을 하느님이라는 가상의 대상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p. 238
비폭력주의는 오로지 폭력의 현장에서만 주장될 수 있다. 제국의 미사일 공격에 제 새끼가 찢겨 죽은 어미가 죽음보다 더한 슬픔을 뚫고 ‘우리는 똑 같은 폭력의 보복을 해선 안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누구도 그 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폭력의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는 사람이 점잖은 얼굴로 ‘저항으로서 폭력도 폭력이다’라고 뇌까리는 건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며 폭력의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 더 끔찍한 폭력이 된다.
비폭력주의의 목표는 ‘비폭력’이 아니라 ‘저항’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예수는 결코 안온한 예배당이나 연구실에서 비폭력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예수는 언제나 폭력의 현장에서 그 폭력을 몸으로 감당하며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중략) 비폭력주의는 폭력적인 투쟁 방법을 넘어서는 투쟁 방법이지 폭력적인 투쟁 방법에도 못 미치는, 투쟁의 정당성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유약한 인텔리들의 요사스러운 말장난이 아니다.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들이 결국 폭력에 희생당하는 운명을 갖는 건, 지배체제가 그들에게서 무장투쟁을 선택한 운동가들보다 오히려 더 큰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p. 254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해석이나 의견은 매우 다양하다. 사랑과 용서의 결정체, 영성가, 비폭력주의자, 하느님의 아들 등등. 그런 모든 해석이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지배체제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관련된 모든 해석과 의견들은 예수가 ‘왜 사형당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09. 6. 18. 도서 구입 목록

2009.06.22 00:03

올 여름, 포천에서 나와 함께 할 책들을 질렀다.
막 배달된 따끈따끈한 새 책들의 첫인상을 적어보는 페이지.

1.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지음
나이가 들면서 모셔야 할 윗사람만큼이나 아랫사람이 많아졌다. 그 동안 아부를 즐겁게 활용하는 능력은 내가 가지지 못했는데, 요즘 들어 가끔 짧고 유쾌한 아부 한 마디에 (아부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살짝 열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2. 첩첩상식, 진중권 지음
진중권만큼 논리 정연하게 말 잘하는 사회인사도 많지 않다. 그러나 본인의 방송 오프닝 멘트들을 모아서 묶은 이 책만큼은 논리적이기 보다는 감정적이고 가벼운 것 같다. ‘진중권의 시사 키워드 사전’이라는 부제는 조금 아쉬운 듯.

3.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미래를 말하다”에 반해서 단번에 구입한 폴 크루그먼의 새 책. (99년에 저술한 책이긴 하지만^^) 대세는 오바마 보다 크루그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4.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지음,
헌법에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주권은 국민에게 나온다고 하였다. 표현의 자유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이는 어떤 법률로도 허가받을 필요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부가 허락한 집회만이 합법집회가 된다.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는 허락되지 않는다. 즉, 국가지도자가 헌법을 존중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 책은 다른 서구 선진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의 헌법과 민주주의가 시민혁명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민주주의는 명문화된 헌법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충분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고 획들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뒤늦게 앓고 있는 지금의 혼든이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것.

5. 유러피언 드림, 제러미 리프킨 지음
제러미 리프킨은 현대문명에 있어서 항상 독창적이고 날카로운 식견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 난 그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는다.

6. 27세, 경매의 달인, 신정헌 지음
경매를 공부하자.

할레드 호세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
Khaled Hosseini, A Thousand Splendid Suns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의 한 가운데에서 꿋꿋하게 살아간 마리암과 라일라의 이야기. 소설은 두 여자의 굴곡진 삶의 궤적을 찬찬히 따라가면서 전란의 포화가 휩쓸고 간 아프간의 절망과 고통을 보여주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더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 두 여인의 질곡이 잘 짜여진 한 편의 별난 소설이기보다 동시대 아프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평범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법. 그렇게 라일라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헤라트에서 가장 부유한 잘릴 한과 하녀 나나 사이에서 ‘하라미(사생아를 비하하여 일컫는 말)’로 태어난 딸 마리암, 학교 선생님인 하킴(바비)과 파리바 사이에서 태어나고 소꿉친구 타리크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는 라일라, 그리고 이들의 남편인 라시드와 그들의 아이들, 아지자와 잘마이.. 이들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소한 사람들이 진실로 사랑했던 기억만이 희망이고 구원이라는 게 여전히 신비롭다(박완서).’ 그렇게 작가는 사랑과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야기는 다소 더디게 진행되지만, 지긋지긋한 전쟁 속에서 인물들의 변해가는 관계와 그에 따른 세밀한 심리 묘사가 이 소설의 백미일 것이다.



밑줄 그으며 책 읽기

p. 388
마리암은 이제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앞에서는 체면도 없었다. 그녀는 서글픈 심정으로 나나를 떠올렸다. 나나도 어머니로서 희생을 했던 여인이었다. 모든 것을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나나는 하라미를 낳은 치욕감을 견뎌냈다. 그리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마리암을 기르고, 나름의 방식으로 마리암을 사랑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결국 마리암은 그녀를 버리고 잘릴을 택했다. 그녀는 뻔뻔스럽게 뒤엉킨 사람들의 맨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이 나나에게 더 좋은 딸이었더라면 싶었다. 모성에 대해 지금 알게 된 걸 어렸을 때 알았었더라면 싶었다.

p. 398
라일라는 잘마이가 자신의 볼에 촉촉한 입맞춤을 하는 걸 좋아했다. 움푹 들어간 팔꿈치와 통통한 발가락도 좋았다. 그에게 간지럼을 태우고, 쿠션과 베개로 터널을 만들어놓고 밑으로 기어가게 하고, 늘 한 손으로 그녀의 귀를 잡고 품에서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그녀는 마루에 누워 다리 사이에 자전거 바퀴살을 잡고 있던 그 오후를 생각하면 속이 뒤틀렸다. 너무너무 아슬아슬했던 순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아들은 축복이었다. 라일라는 자신의 두려움이 근거 없는 것이었으며, 아지자를 사랑한 것만큼 뼛속까지 잘마이를 사랑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p. 505
마리암은 이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많은 걸 소망했다. 그러나 눈을 감을 때, 그녀에게 엄습해온 건 더 이상 회한이 아니라 한없이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그녀는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녀는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마리암의 마지막 생각은 코란의 한 구절이었다. 그녀는 그걸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신은 진실을 갖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신은 밤이 낮을 가리게 하시고, 낮이 밤을 따라잡도록 하신다. 신은 해와 달을 소용이 되도록 만드셨다. 해와 달은 정해진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신은 위대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p. 560
교실 문간 위에 직사각형 게시판이 걸려 있다. 자만이 사포로 닦아 하얗고 반들반들하게 칠한 것이다. 그 위에 자만은 붓으로 넉 줄로 된 시를 써 넣었다. 라일라는 그것이 아프가니스탄에 돈을 주겠다던 원조가 오지 않고, 재건축이 너무 천천히 진행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고, 탈레반이 다시 결집하여 돌아와 복수를 할 것이고, 세계는 다시 한 번 아프가니스탄을 잊을 것이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의 답변이라는 걸 안다. 그 시행은 그가 좋아하는 하페즈의 가잘에 나오는 것이다.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헛간은 장미꽃밭으로 바뀔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살아 있는 모든 걸 집어삼키려고 홍수가 닥치면
노아가 태풍의 눈 속에서 너희들을 안내할 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아웃라이어 OUTLIERS, 말콤 그랜드웰, 김영사

 

이 책은 과학자들이 아웃라이어라고 부르는, 다시 말해 보통사람의 범위를 뛰어넘는 이들에 대한 얘기다. 저자는 천재를 비롯해 한 시대를 풍미한 거부들과 록스타, 컴퓨터 해커들의 성장배경을 분석하고 있으며, 이름난 변호사의 비밀과 유태인은 왜 성공을 하였는지, 그리고 아시아인이 수학을 왜 잘하는지 하나씩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공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부 틀렸다!"라고 주장한다. 성공에는 개인의 능력보다도 성공한자에게 부여된 여러 조건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 쉽게 말해 타고난 두뇌보다 여러가지 환경적 요인이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 전부는 아니지만 크게 동감. 자세한 건 아래 발췌..

 

 P36

최고 중의 최고로 구성된 어떤 엘리트 하키선수팀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의 40퍼센트는 1~3월, 30퍼센트는 4~6월, 20퍼센트는 7~9월, 10퍼센트는 10~12월에 태어났다. (중략)

지구상에서 가장 하키에 미친 나라, 캐나다에서는 코치들이 아홉 살이나 열 살 무렵의 소년들을대상으로 후보군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때 몇 달간 더 숙달될 수 있는 기회를 누린 소년들이 더 크고 보다 재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후보군으로 선별된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지역리그에 남아 고작 20여 경기를 뛰는 아이들과 달리 보다 훌륭한 코치, 뛰어난 팀 동료와 함께 한 시즌에 75경기를 소화하고 두세 배로 연습하게 된다. 그밖에 다른 기회도 폭넓게 주어진다. 물론 출발점을 놓고 보면 후보군의 강점은 선천적이라기보다 그저 몇 개월 더 일찍 태어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창 성장기에 있는 소년들은 훌륭한 코치와 강도 높은 연습 덕분에 정말로 뛰어난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메이저주니어 B리그에 도전해볼 만한 선수가 되고 거기서 더 큰 리그로 나아갈 수도 있다.

반슬리는 연령대를 기준으로 사람을 선별하고 분류하고 차별적으로 대하게 되면, 특정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혜택을 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른 나이에 누가 잘하고 누가 그렇지 못한가를 결정하면, 다시 말해 재능의 유무를 가리고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경험을 해주면 특정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큰 이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P43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죠. 우리는 어린 나이에 똑똑한 아이들을 선별합니다. 우등 독서반도 있고 우등 수학반도 있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거나 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는 숙달되어 잘하는 것과 정말로 똑똑한 것을 혼동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몇 달 빨리 태어난 아이들은 상위코스에 들어가고 더 좋은 걸 배우죠. 이듬해가 되면 그 아이들이 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실제로 더 잘하기도 해요.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나라는 덴마크뿐입니다. 덴마크는 국가 차원에서 열 살이 되기까지는 아이들을 능력에 따라 분류하지 않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덴마크는 선택적으로 변별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 다시 말해 몇 달 먼저 숙달되어 잘하는 효과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P44

마태복음효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다시 말해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특별한 기회를 얻어낸 사람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얘기다.

  

P55

이어 에릭손과 그의 동료들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와 프로 피아니스트들을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마추어들은 어릴 때 일주일에 세 시간 이상 연습하지 않았고, 그 결과 스무살이되면 모두 2000시간 정도 연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프로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매년 연습시간을 꾸준히 늘려 바이올리니스트와 마찬가지로 결국 1만 시간에 도달했다.

에릭손의 연구에서 무릎을 치게 되는 부분은 그들이 '타고난 천재', 즉 다른 사람이 시간을 쪼개 연습하고 있을 때 노력하지 않고 정상에 올라간 연주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들은 '미완의 대기', 다시 말해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엔 뭔가가 부족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어느 연주자가 최고 수준의 음악학교에 들어갈 만큼 재능이 있다면, 실력 차이는 그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전부다. 덧붙이자면 최고 중의 최고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훨씬, 훨씬 더 열심히 한다.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탁월성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연습량을 확보하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다.

  

P57

"숙달된 작곡가의 기준에서 볼 때 모차르트의 초기 작품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가장 초기에 나온 것은 대개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작성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점차 발전해왔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에 작곡한 협주곡, 특히 처음 일곱 편의 피아노 협주곡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는 진정한 모차르트의 협주곡은 스물한 살 때부터 만들어졌다. 이는 모차르트가 협주곡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P98

허드슨의 말은 IQ가 농구선수의 신장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키 160센티미터인 사람이 프로 농구선수가 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얼마나 되겠는가? 솔직히 희박하다. 적어도 180센티미터나 190센티미터는 되어야 하고, 다른 조건이 비슷하다면 190센티미터보다는 2미터인 편이 낫다. 그러나 특정 지점을 지나면 키는 더 이상 관건이 되지 않는다. 2미터인 선수가 그보다 5센티미터 작은 선수보다 저절로 더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마이클 조던은 195센티미터였다). 농구선수는 그저 충분할 만큼 키가 크면 된다. 이것은 지능도 마찬가지다.

  

P123

오펜하이머라면 리드 대학에서 학위를 따지 않았을까? 그라면 교수를 설득해 오전 수업을 오후 수업으로 바꿔주도록 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크리스 랭건보다 더 똑똑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필요한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136

터먼의 연구결과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C그룹이 얼마나 재능 있는 사람들인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때만 해도 그들의 호기심과 지적 순발력, 광채는 눈부실 지경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아웃라이어였다. 그런데 터먼은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계층 출신의 어린 천재는 단 한 명도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는 단순한 결과를 내놓았다.

C그룹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나 대뇌피질에 각인된 것이 부족하진 않았다. 다만 우리가 방금 확인한 것, 즉 세상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준비시켜줄 공동체가 부족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주어져야 했다. 비용이 많이 들거나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C그룹은 그것이 부족해 재능을 탕진하고 말았다.

  

P221

더 중요하게도 그는 승객, 의사, 동료 조종사, 그가 깨운 예비 조종사, 두바이의 본사 관리자, 헬싱키의 관제탑 등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야 했다. 승객이 졸도한 순간부터 헬싱키에 착륙한 그 40분간 조종실에 침묵이 감돌았던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 레트와트에게 필요했던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었고, 그것은 명령을 내리는 차원을 넘어 가장 분명하고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채근하고 달래고 협상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포함한다.

  

P263

4, 8, 5, 3, 9, 7, 6. 이 숫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자. 이제 20초 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며 방금 외운 숫자를 기억해내 다시 큰소리로 말해보자. 영어권에서 사는 사람들이 일곱 개의 숫자를 완벽하게 외워서 다시 말할 가능성은 5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중국인이라면 거의 확실하게 이 숫자를 다시 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인간의 기억이 작동하는 최소단위는 2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초 안에 말하거나 읽을 수 있는 것은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영어와 달리 중국어에서는 앞서 말한 숫자, 즉 4, 8, 5, 3, 9, 7, 6을 언제나 2초 안에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일곱 개 숫자를 20초 동안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다. (중략)

중국에서는 네 살만 되어도 보통 40까지 헤아린다. 그 나이의 미국 어린이들은 고작 15까지밖에 세지 못하며 대부분 다섯 살이 되도록 40까지 세지 못한다. 이에 따라 다섯 살 짜리 미국 어린이는 같은 나이의 아시아 어린이에 비해 기초적인 수학 훈련에서 1년이나 뒤처지게 된다. 숫자체계가 규칙적이라는 것은 아시아 어린이들이 덧셈 같은 기초적인 산술을 훨씬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의 일곱 살짜리 꼬마에게 삼십칠(thirty-seven) 더하기 이십이(twenty-two)를 암산하라고 하면, 그 꼬마는 먼저 '37+22'처럼 말을 숫자로 바꿔서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나이의 아시아 꼬마에게 '삼십칠 더하기 이십이'를 물어보면 들리는 그대로 암산이 가능해 쉽게 계산한다. 숫자로 바꿔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저는 그것이 수학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의 차이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인들에게 숫자는 단순히 암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잘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패턴이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어 주죠." (중략)

한국인의 경우, 그들의 문화적 요소 중 하나가 비행기 조종이라는 현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매우 요긴한 문화적 유산 또한 존재한다. 문화적 유산은 매우 중요하다.

  

P282

"보세요. 르네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어요. 많은 학생이 그냥 집중만 하다가 흥미를 잃고 말죠. 하지만 르네는 '저건 내가 어떻게 해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도저히 답을 못 얻겠는걸. 그래도 저건 중요한 거야. 나는 제대로 알고 싶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답을 알아내고 '그래. 맞았어'라고 기뻐하고 있죠." (중략)

우리는 보통 수학을 잘하는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쇤펠트는 재능보다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시도하고자 하면 수학을 마스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쇤펠트는 학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 성공은 대개 보통 사람이 30초 만에 포기하는 것을 22분간 붙잡고 늘어지는 끈기와 지구력, 그리고 의지의 산물이다.

  

P284

매년 세계의 유명 도시에서 수학 올림피아드가 열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1000명의 중학교 2학년생이 이 시험을 치른다. 보는 수학 올림피아드의 경우에도 단 한문제도 빼놓지 않고 푸는 학생이 많은 나라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 결과를 가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끈기 있게 풀어내야 할 문제를 제시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나라가 노력과 끈기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를 통해 그 나라의 수학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

그 순위의 상위권에 어떤 나라가 놓여 있을까? 그 결과는 별로 놀랍지 않을 것이다. 싱가포르, 한국, 대만(중국), 홍콩, 그리고 일본이다. 이 다섯 나라는 공통적으로 논에 물을 대는 쌀농사를 지어왔고, 그 일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문화가 자리 잡은 나라들이다. 그들 나라는 돈 한 푼 없는 가난한 농부들이 1년에 3,000시간씩 수백 년간 질척대는 논바닥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1년 내내 해뜨기 전에 일어날 수 있다면 어찌 부자가 못 되리"라고 말해온 그런 곳이다.

  

P300

"이렇게 시간을 충분히 주면 좀더 부드러운 환경 속에서 문제를 풀 수 있죠. 저는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게 만드는 기존의 수학교육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 아래서는 모든 문제에 빨리 대답해야 하고 처음으로 정답을 맞힌 학생이 보상을 받죠. 그러면 누구는 수학을 잘하고 또 누구는 수학을 못하는 식의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교사는 문제를 더 설명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되고, 앉아 있는 학생들도 자신이 아는 것을 되짚어보면서 좀더 천천히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수업이 지체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천천히 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더 많이 외우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되죠.

  

P306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간과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똑똑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 성공한다는 신화는 그저 자신이 할 일에 충실했다는 뜻 정도로만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빌 게이츠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열세 살 소년도 최고의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단 한 명의 소년에게만 1968년도에 시간 공유 터미널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만약 백만 명의 소년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오늘날 얼마나 더 많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활약하고 있을까? 성공에 대한 진정한 교훈을 잘못 이해하거나 무시하면 우리는 재능을 낭비하게 된다. 만약 캐나다에 7~12월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리그가 있다면 우리는 두 배로 많은 성인 하키스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전문영역에서 놓쳐버린 잠재력을 합쳐보자.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보다 더 풍성한 곳이 될 수도 있었다.

08년 10월 17일, 도서구입 목록

2008.10.17 22:52
1. 미래를 말하다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폴 크루그먼 지음, 현대경제연구원BOOKS
2.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재단 엮음, 바다출판사
3. SERI096 의료시장을 움직이는 생각의 시작, C.A.R.E., 최진희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모처럼 새로운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여 기분을 내보았다.

1. 미래를 말하다 (The conscience of a Liberal), 폴 크루그먼 지음, 현대경제연구원BOOKS

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구먼(Paul Krugman)의 07년 저작. 53년 뉴욕 출생, 74년 예일 대학교 졸업, 77년 MIT대학에서 경제학 발사, 현재 프린스턴 대학 경제학과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 97년 아시아 외환 위기 전에 폴 크루구먼은 "동아시아 경제가 노동과 자본 투입으로 승승장구한거지, 이제 조만간에 그 성장이 둔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던 경제학자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림. 2000년부터 NYT에 고정칼럼을 기고 중. 진보주의자이자 반 부시주의자로 알려져 있음. 본 저서에서는 경제적 불평등과 복지국가로서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미국 의료보험제도의 문제점과 개혁의 걸림돌, 93년 클린턴이 개혁에 실패했던 이유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아래 크루그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가 하고자하는 얘기가 꼭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현실적으로 극심한 소득 불균형은 극심한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사회 불평등은 단순히 부러움과 수치심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민들의 생활방식에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다. 수백만의 중산층 가정이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형편보다 무리해서 집을 사고, 갚을 수 있는 능력보다 많은 빚을 진다. 이들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 노벨 생리,의학상, 노벨 재단 엮음, 바다출판사

1901년 폰 베링으로부터 2006년 앤드루 파이어와 크레이그 멜로에 이르기까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 연설을 순서대로 엮은 책으로 622쪽에 달하는 만큼 사료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됨. 학부생 시절 기초의학, 특히 생화학을 배울 때면 단원마다 이 발견으로 누가 언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는 얘기가 곁들여져 있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현대의학의 중요한 장면들은 노벨상에 모두 녹아들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의학사는 항상 관심이 가는 주제인데, 현대의학의 놀라운 업적들을 노벨상 수상 당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3. SERI096 의료시장을 움직이는 생각의 시작, C.A.R.E., 최진희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SERI다운 다소 보수적인 색깔을 띄지 않을까, 비의사인 저자가 의료시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안고 구입한 책. 살짝 구태의연함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호기심에 구입.
애거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 본명은 Agatha Mary Clarissa Miller Christie Mallowan. 1890년 9월 15일 영국 데번 출생. 1914년 크리스티 대령과 결혼. 1916년 첫 작품 "스타일스 저택의 수수께끼" 쓰고 1920년 출간. 1928년 이혼. 1930년 고고학자 맥스 맬로원과 재혼. 1971년 영국 왕실로부터 Dame 작위 받음. 1976년 1월 12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1939년 발표됨. 10명의 사람이 외딴 섬 '병정섬'에 초대되고, 구전되는 어떤 동요대로 한명식 죽고, 결국 섬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고립된 공간의 정해진 사람 속에 범인이 하나 섞여 있고 순차적으로 한 명씩 죽어나가는 추리소설 형식의 원형으로 인정받음.

1달 전인가 라디오에서 여름 특집 추리소설 소개 코너에서 듣고 사두었다가 뒤늦게 읽게됨. 플롯이 탄탄하고 완성도가 뛰어나서 몰입되어 읽었으나 70년 전 소설이라서인지 뒤로 갈수록 다소 작위적이란 느낌이 없지 않음.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덞이 남았네.
여덟 꼬마 병정이 데번에 여행 갔네. 하나가 거기 남았네. 그리고 일곱이 남았네.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여섯 꼬마 병정이 벌통 갖고 놀았네. 하나가 벌에 쏘였네. 그리고 다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 했다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 향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세 꼬마 병정이 동물원 산책 했네. 큰 곰이 잡아갔네. 그리고 두 명이 남았네.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죄인들입니다.
에드워드 조지 암스트롱, 당신은 1925년 3월 14일, 루이자메어리 클리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에밀리 캐롤라인 브렌트, 당신은 1931년 11월 5일에 일어난 베아트리스 테일러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윌리엄 헨리 블로어, 당신은 1928년 10월 10일, 제임스 스티븐 란더를 죽게 했습니다.
베라 엘리자베스 클레이슨, 1935년 8월 11일, 당신은 시릴 오길비 해밀턴을 죽게 했습니다.
필립 롬바드, 당신은 1932년 2월, 어느 날 동아프리카의 원주민 스물한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존 고든 맥아더, 당신은 1917년 1월 1일, 아내의 정부인 아서 리치먼드를 죽게 했습니다.
앤터니 제임스 매스턴, 당신은 작년 11월 14일, 존 콤스와 루시 콤스를 죽게 했습니다.
토머스 로저스와 에델 로저스, 1929년 5월 6이 당신들은 제니퍼 브래디를 죽게 했습니다.
로렌스 존 워그레이브, 당신은 1930년 6월 10일에 에드워드 시튼을 죽게 했습니다.
법정에 선 피고 여러분,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할 말이 있습니까?
홍성욱의 과학에세이 과학, 인간과 사회를 말하다
홍성욱| 동아시아| 2008.07.10 | 298p | ISBN : 9788962620009

2008년 5월과 6월에는 수십만 명이 넘는 시민이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서 촛불을 들었다. 정부 측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은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지만, 시민들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졸속으로 협상을 타결하고, 여러 차례 말을 바꾸고, 시민들의 위험 인식을 '괴담'으로 몰아붙인 정부의 행동은 처음부터 신뢰를 실추시켰고, 이렇게 신뢰가 실추된 상황에서 위험에 대한 과학적 사실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광우병 위험과 관련해서는, 황우석 사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BRIC에서의 토론도 속수무책이었다.
p5

결국 문제의 쟁점은 신뢰의 문제. 신뢰를 먼저 저버린 쪽은 어디었는가? 이런 얘기를 하면 '빨갱이'라는 얘기를 듣기 쉽상, 이거랑 빨갱이랑 무슨 상관? 선진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무조건적인 FTA 타결보다 '신뢰'와 '투명성'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번 깨진 신뢰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필요로 한다.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


아직 그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많은 국민을 절망하고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여론은 대운하를 반대하는 입장이 훨씬 뚜렷하지만, 권력을 쥔 사람들이 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운하가 아니라 수로다" "부분적으로 시행한다" "추진하는 데 변화가 없다"는 식으로 추진 의지를 흘리고 있다. 국민이 심각한 저항에 부닥치자, 2008년 6월 정부는 대운하를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운하를 건설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아직 이를 깨긋이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지는 않고 있다.
p172

대운하를 찬성하는 여론은 지난 1월 40%에서 이제 19%로 떨어졌다. 반대 여론은 70%에 이른다. 심지어 보수적인 우리 집안 어른들도 '대운하는 고집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라고 말씀하신다. 이쯤되면 이것은 퍼퓰리즘일까, 민심일까. 국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귀가 멁어서이서일까, 이해중추가 평균보다 모자라서일까. 아니면 다 들리고 이해하면서도 대운하의 건설에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음으로 양으로) 걸려있기 때문일까. 결국 지배계급은 자신의 이해를 주장하되, 좀 더 듣기 좋은 말로 '국가 전체의 이해', 즉 '국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The mouse that roared  
레너드 위벌리| 박중서 역| 뜨인돌| 2005.06.15 | 279p | ISBN : 8958071338 


북부 알프스의 험준한 습곡에 자리한 길이 8킬로미터, 폭 5킬로미터 정도의 작은 나라. 계곡 셋, 강 하나, 높이가 60미터 쯤 되는 산 하나와 성 한 채로 이루어진 산악 국가. 아 그리고 높이가 6미터쯤 되는 작은 폭포도 하나 있음. 북부 지역에 높은 산봉우리로 둘러싸인 토질이 좋고 일조량이 풍부한 1.5 제곱킬로미터 가량의 포도밭이 있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작은 포도로 특별히 뛰어난 향기를 지닌 와인을 생산하는 그랜드 펜윅 공국.

건국 600년 된, 인구 6000명의 그랜드 펜윅 공국은 작가 레너드 위벌리가 창조한 작은 약소국으로 얼마 전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칼럼으로 단번에 유명해졌다. 지도에서도 찾기 힘들 만큼 세계에서 가장 작고 힘없는 약소국이 어느 날 갑자기 초강력 핵폭탄을 보유함으로써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한다는 줄거리.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체 인구가 무려 6000명에 육박하게 되면서 식량과 피복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 작은 나라의 고민은 시작된다. 유일한 수출품이던 와인의 발효통에 물을 딱 10퍼센트만 더 늘여서 양을 늘이자는 '희석당'과 이에 반대하는 '반희석당'은 이 국가 의회를 반씩 점유하고 있는 양대 정당. 갑론을박을 벌이던 중, 22세의 젊은 여성 군주, 글로리아나 12세 대공녀는 미국이 '혹시나 공산주의 국가가 될 우려가 있는 나라들에게만 수백만 달러씩 돈을 주고서 아예 돌려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착안하여 공산당을 하나 조직하자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나 그랜드 펜윅 최고의 철학자이자 재사(才士)로 인정받는 배스컴 털리는 그런 식으로 돈을 손에 넣는다면, 그것은 그랜드 펜윅의 명예를 팔아 고의적으로 다른 관대한 나라에게 사기를 친 셈이며 단지 그 나라가 부자라는 이유로 도둑질을 한 것과 같다고 반대한다. 그리고 털리는 '전통에 의하면 외국으로부터 명예롭게 돈을 빌리는 방법은 단 한가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자고 아이디어를 낸다.

"사실 돈이 필요한 나라로선 미국에 전쟁을 선포한 다음 패배하는 것보다 더 수지맞는 해결책은 없다는 거예요. 그런 전쟁의 경우에는 영토를 상실할 염려도 전혀 없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전쟁 직후 패전국에서는 훗날 다시 전쟁에 이용될 수 있는 중공업이나 기타 설비를 파괴하고 제거한 뒤에, 다시는 재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더군요. 허나 이것은 말뿐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대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패전국의 경제가 침체를 면치 못하게 되거나, 도는 다른 적국의 침범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미국인들은 이들 두 가지 경우 모두에 대해 자기네 예산을 들여서 도움을 준다는 거예요. (...)

흔히 패전국에서는 군대를 해산하고 다시는 조직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죠. 하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오히려 이들 군대야말로 간접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미국 자신의 안전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는 거예요. 따라서 패전국은 자체적으로 육군과 해군과 공군을 보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국이 무기한으로 그곳에 주둔하게 되는 거죠."

p48


초강대국 미국에 전쟁을 벌여서 곧바로 항복을 하자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은, 원자폭탄의 100정도 효율이 좋은 쿼디움을 이용한 Q폭탄을 방금 개발한 코킨츠 박사를 우연찮게 사로잡음으로써 얼떨결에 승리를 거두게 되고,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펜윅은 20국의 약소국가 연합을 구성하여 미국과 소련, 영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의 모든 원자력 및 핵 시설을 조사하고,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게 된다. 끝내  글로리아나 대공녀와 털리 배스컴은 결혼을 하였고, 그리하여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화려하고 수려한 문장은 없지만, 1950년대 쓰인 책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고 세련된 얘기를 담고 있다. 가상국가인 "그랜드 펜윅"을 통해 작가가 꼬집고 싶은 것은 단지 미국의 패권주의 뿐만은 아니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대칭적인 관계, 언론과 군중들의 행태, 정치적 상황과 과학자와의 관계에 대해 신랄한 풍자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소의 대결구도가 종식된 지금 이런 식의 풍자가 다소 식상한 감은 없지 않으나, 하룻밤에 가볍게 읽고 지나갈 만한 이야기. 점수를 메기자면 재미 별 넷, 참신성 별 둘반.

이 소설은 1959년 <핑크 팬더> 시리즈의 주인공 피터 셀러즈 Peter Sellers와 <네 멋대로 해라>의 여주인공 진 시버그 Jean Seberg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피터 셀러즈는 주인공인 글로리아나 대공녀와 마운트조이 백작, 그리고 털리 배스컴의 1인 3역을 소화해서 호평을 받았다고 함.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글로리아나가 나이 많은 할머니로 등장, 털리 배스컴은 코킨츠 박사의 딸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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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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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문제의 그 Q폭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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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부리로 "그렇지, 다른 쪽 부리는 "아니지"라고 말하고 있는 그랜드 펜윅의 쌍두 독수리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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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진 시버그 Jean Se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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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레너드 위벌리의 그랜드 펜윅 시리즈

첫 장편소설『약소국 그랜드 펜윅 이야기(THE MOUSE THAT ROARED)』(1953)
이후 그랜드 펜윅의 초창기 역사를 다룬 『천하무적 그랜드 펜윅(BEWARE OF THE MOUSE)』(1958)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을 풍자한 『그랜드 펜윅, 달나라에 가다(THE MOUSE ON THE MOON)』(1962)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을 풍자한 『그랜드 펜윅, 월 스트리트에 가다(THE MOUSE ON WALL STREET)』(1969)
석유 위기를 풍자한 『그랜드 펜윅, 서구를 구하다(THE MOUSE THAT SAVED THE WEST)』(1981)




살라미 소시지의 열풍이 가라앉자마자 알코올에 관련된 또 다른 열풍이 불어왔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미 해군이 생쥐를 가지고 한 어떤 실험에서, 거의 곤드레만드레가 될 정도로 알코올을 섭취한 생쥐를 치명적인 농도의 감마선에 노출시켰더니 놀랍게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의 결과 해군 당국은 두 가지 조심스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생쥐가 인간에 비해 두 배나 주량이 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포유류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매우 높아지면, 원자탄이나 다른 핵폭발에 대하여 분명치는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는 면역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술집이나 주류 판매점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금주법이 폐지된 직후만큼이나 급중했다. 술 취한 상태를 가리켜 '음주안전'이라고 지칭한 <뉴욕 데일리 뉴스>의 신조어는 곧 어디서나 유행하는 말이 되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금주법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바지 뒷주머니에 납작한 술병을 하나씩 차고 다녔다. (...)

대중들은 오히려 술 취하는 편을 선호했고, 그 결과 '안티 음주안전' 기사를 싣게 되면서부터 <트리뷴>의 판매부수는 급격히 떨어지고 말았다. 신문사 측에서는 과학자들로부터 알코올이 핵폭탄의 방사능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효과가 전혀 없다는 직접적인 발언을 얻어내려고 했지만, 이것도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다. 과학자들조차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생쥐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 실험의 결과를 쉽게 반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에도 실제로 적용이 불가능하다 치더라도, 그럴 가능성조차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조건 하에서 생쥐에게 적용된 실험이 인간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된 경우는 매우 많았다. 따라서 만취 상태가 감마 방사선에 면역성을 갖게 해주지 않는다고 단언하려는 과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p84


"어쩌면 당신 말대로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어요. 우리가 전쟁을 시작한 까닭은 독립을 계속 유지하면서도 명예로운 방법으로 돈을 빌리고자 하는 것 뿐이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됨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이라곤 국경을 감시해야 하고, 모두로 하여금 이웃 사람을 의심하게 하고, 언제라도 그 끔찍한 폭탄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 결국 이제는 예전보다도 오히려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된 셈이예요. 저로선 이 상황을 좋다고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어요."
"승리는 때때로 이익보다는 더 큰 책임만 가져오게 됩니다." 털리가 대답했다.

p188

"지금 당신은 변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가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지금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르겠다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겁니까? 당신은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인류의 한 사람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미국에 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면 인류 전체에 대한 의무는 없는 겁니까? 과연 당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백만의 인류를 말살할 무기를 만들 권리가 있을까요? 어느 것이 우선입니까? 당신과 같은 인류 전체를 위한 의무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조국을 위한 의무입니까?

"난 모르겠소." 코킨츠 박사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난 모르겠소.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훗날 여기서의 발언으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다면, 그것은 내가 인류의 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미국시민이기 대문이라는 것뿐이오."

p213


세계 정치의 중심이 된 펜윅 성

<뉴욕 데일리 뉴스>는 무려 5단짜리 성채 지도 위에 이와 같은 표제를 붙였다. 또한 세 면에 걸쳐 그랜드 펜윅의 사진을 싣고, 두 면에 걸쳐 글로리아나 대공녀의 모습을 싣고, 한 면에는 절반씩 똑같이 나누어 공국에 대한 기사와, 미국 침공의 주역인 정치인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대공녀의 모습이 실린 두 면에서는 그녀의 외모를 밀로의 비너스, 리타 헤이워드, 영국 여황 엘리자베스 2세, 그리고 어느 동부의 작은 대학 고전학 교수가 주장했던 것처럼 트로이의 헬렌과 비교하고 있었다. 어느 그림 - 왜냐하면 사진이 전혀 없었으므로 - 은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림 설명에는 그랜드 펜윅 와인이야말로 와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미녀의 와인으로 손꼽히며, 대공녀는 매일 아침마다 와인 두 잔씩을 마신다고 나와 있었다. 그 결과 뉴욕에 있던 그랜드 펜윅 와인은 그 다음날로 재고가 바닥나고 말았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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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Culture shock 
클라이브 레오나드 로린스| 이동진 역| 휘슬러| 2005.08.15 | 271p | ISBN : 8990457440 

관광지나 숙박, 레스토랑을 소개하는 여행책자가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사람들 사는 모습이나 풍습 혹은 관습, 사회 경제적 상황, 종교, 정치, 지리, 주변 국가들과의 갈등 등에 대해 언제나 만족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Curious 시리즈. 산토리니 어느 호텔에 책장에 누군가가 남겨두고 간 책을 빌려 읽고 역시나 대만족.


모순
그리스인은 대단히 모순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부정과 대조, 전도와 대구 등의 개념에 익숙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 사회는 오랜 법률적 전통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임에도 법 적용에 있어서는 그 어느 문명국보다도 자의적인 면을 보이곤 한다. '법이란 글자 그대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다 Ho nomos dev hermeneuetai kata gramma'라는 말에서 잘 드러나는 이러한 자의적인 법 해석과 적용은 투철한 준법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적 경향은 독일인의 정확함, 프랑스인의 지적 교양, 영국인의 침착성처럼 그리스인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얽히고 설킨 사상과 논리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 정신이 가장 기쁜 마음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여기에는 논리적 엄정성이 있다.

정치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샤를르 페기는 한 때 '모든 것은 신비주의와 함께 시작하고 정치로 끝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물론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지만 정치의 발상지인 그리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스의 역사는 곧 인류의 '정치의 역사'이기도 하다. 정치를 뜻하는 politics란 말도 도시를 뜻하는 polis에서 유래했다. (... ) 그리스의 정치는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을 해결해가는 기술이며, 보다 구체적인 현실이다.

정체성
그리스인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은 60여 년 전 존 마이레스 경이 '그리스인은 과연 누구였나'라는 질문을 통해 역사적 관점에서 제기한 바 있다. 마이레스 이전에는 그리스 마니아인 G. 로웨스 디킨슨이 '일반화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특히, 그리스인에 관한 주제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위의 질문에 대한 한 세대 이후의 대답은 그리스인의 본질적인 지속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마이레스는 '그들은 항상 형성의 과정 중에 있었다.'고 답하였다. 셜리의 다음 언급도 유명하다.'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
심지어 그 명칭 역시 의문의 여지가 많다. 먼 옛날 로마의 지배자들은 그리스인에게 여러 이름을 부여했다. 그리스 서부의 작은 마을인 쿠마에의 식민지 주민을 그레일Grail이라 불렀던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름은 곧 '그라에시Graeci'로 바뀌었으며 그 다음에는 '그라에세아Graecea', 그리고 마침내 '그리스Greece'로 변하였다. 그것이 라틴어로부터 고대 영어로 옮겨졌고 그대로 굳어졌다. 그리스인은 스스로를 '헬레네스Hellenes'라 부른다. 이는 그들 나라의 이름 '헬라스Hellas'에서 유래한 것으로 북동부의 테살리 지방에 정착한 부족의 이름이었다. 오늘날 그리스인은 자신의 나라를 '엘렌Ellen' 혹은 '엘라스Ellas'라고 부르고 그들의 언어를 '엘레니카Ellenika'라고 부르길 좋아한다. 그리스적임을 뜻하는 형용사는 '엘레니코스ellenikos'이다. 때로는 자신들끼리 '로마이오이Romaioi'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저

2008.08.0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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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살림| 2003.12.30 | 95p | ISBN : 8952201779
 


'헬라스적 사상'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 그것은 어떤 사유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인가? 헬라스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들의 정신을 찾아내었고, 그렇게 형성된 사유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었는가? 이 물음들이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관심사이다.

'뮈토스적 사고에서 로고스적 사고에로(Von Mythos zum Logos)'라는 상투적인 설명은 독일의 고전 철학자인 빌헬름 네슬레가 헬라스에서의 합리화(이성화) 과정을 그려내려한 동명의 저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독일에서 이 책을 출간되었던 1940년대의 정치 상황과 또 저자가 히틀러가 주도하던 '국가 사회주의자 운동'의 추종자였음을 떠올려보면, 그는 고전학 분야에서 국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진작시키려는 한 방편으로 저술활동을 했음이 분명해 진다. 심지어 그는 책의 서문에서 "정신의 미성숙으로부터 그 성숙으로의 성장은 아리아 민족에게 남겨져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가장 재능 있는 인종에 속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헬라스 종족이 합리적 사고에 대한 능력 때문에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는 생각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인종적 편견에 깊이 뿌리 박혀 있던 고정된 시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쨌든, 많은 역사가들은 중동 지방의 의학, 수학, 천문학 분야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헬라스의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로 받아들여지는 근거는 '자연의 발견'과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실천'이라고 요악될 수 있다.

길게 기술된 헬라스적 사유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1)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또는 산파술이라 불리는 철학적 방법에서 명확히 찾아볼 수 있는 대립되는 사고방식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 2) 기하학적 사고를 통해 후에 논리학이라고 불리는 추상적 사고방식으로의 전개, 3) 헬라스어의 특징에서 연유된, 정신적 특징을 지니는 개념적 언어와 과학적 개념의 형성, 4) 신들의 세계를 인간의 세계가 더 이상 건널 수 없는 장벽에 의해 가로막힌 세계로 보지 않았던 헬라스인 특유의 종교관과 이에서 비릇된 객관적 사고(설명이 더 필요하지만)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헬라스적 사고의 기원을 탐구하는 몇 가지 관점 - 1) 신화에서 철학으로, 2) 오리엔트의 영향사적 의미, 3) 문학 장르의 발전, 4) 헬라스의 종교와 철학의 관계, 5) 폴리스의 생성과 철학의 발생 - 에 대해 하나씩 소개하고 각각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실제로 폴리스의 정치 체제는 아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웅변적 경쟁, 쟁론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바로 그 무대가 공공의 광장인 아고라인데, 아고라는 시장이기 이전에는 회합의 장소였다. 말로써 경쟁하는 사람들, 웅변에 대해 웅변으로 맞서던 사람들은 이러한 계급적 질서를 갖는 사회에서 동등한 계급이 되었다. 모든 대결, 즉 모든 에리스는 평등의 관계를 전제한다. 경쟁은 단지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사회적 생활의 논쟁적(경쟁적) 개념의 핵심에 이 평등주의적 정신이 깔려 있다. 이제 아르케는 더 이상 어떤 한 사람의 배타적인 속성일 수 없었다. 국가 그 자체는 모든 사적이고, 개인적인 성격을 박탈 당하였다. 국가가 특정한 집단의 지배자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을 때, 국가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가 되었다. p78

폴리스의 탄생과 더불어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법의 기록'이다. 법을 기록한다는 것은 비단 법의 영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법을 '말하는' 기능을 가진 바시레이스의 사적인 권위로부터 법을 멀찍이 떼어 놓는 것이었다. 따라서 법은 공공의 자산이 되었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일반적 규칙이 되었다. 한 사람의 군주에 의하여 유지되었던 정의는, 더 이상 신적 질서 체계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기록된 글자에 의하여 공중에 드러난 정의는 엄격한 인간 차원으로 구체화될 수 있었다. 정의는 곧 법이다. 동시에 정의는 모든 것에 공통하고 모든 것보다 우월한 원리로서, 또 논의에 따르고 법령에 의하여 수정되어야 하는 합리적 기준으로서 나타날 수 있었다. p82



저자는 이 세계의 본성과 질서에 관한 자연 철학자들의 탐구가 그들 이전의 신화적 사고보다 더 체계적이고, 더 이론적이며, 더 합리적일 수 있지만, 신화적 사고, 그 전-과학적인 사고는 모든 헬라스적 자연관과 과학적 사고에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며, 헬라스인들의 정치적, 윤리적, 철학적 사고에 침투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이러한 사고들이 또한 고전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형성에 거름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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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사유의 기원 (Les)origines de la pens´ee grecque 
장 피에르 베르낭| 김재홍 역| 길| 2006.03.25 | 207p | ISBN : 898767147X 
  책소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php?bid=2123032
  리   뷰   http://www.kungree.com/book/good30.htm

저자 김재홍은 이미 93년에 장 피에르 베르낭의 저서 "그리스 사유의 기원"을 번역한 바 있고, 본인의 논문같은 동명의 저작에서도 베르낭의 관점을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교재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원전으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

살림지식총서 시리즈

2008.08.06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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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준비하면서 호기심에 구입한 책 중 하나가 살림지식총서049 <그리스 아유의 기원>이다. 살림지식총서는 2003년 6월에 나와 만 4년 만인 2008년 8월 현재 334권을 넘어섰다. 모두 100쪽 미만 분량에 가격은 3300원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작년까지 100만부 정도 나갔다고 하니 권당 3000~4000부 정도 팔린 셈이다.

기존 문고본이 선진국의 문고들을 그대로 번역해 옮긴 것이라면 살림지식총서는 모두 국내 필자를 기용, 우리의 시각으로 세상의 지식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출판사 측은 “취향이나 정파적 성향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일종의 백과사전을 지향한다”고 했다.

근래 들어 살림지식총서 외에도 책세상의 '책세상문고',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이후의 ‘No-Nonsense 시리즈’, 웅진지식하우스의 ‘고정관념Q 시리즈’, 프로네시스의 ‘지식전람회’ 등 문고판 인문서들이 부쩍 늘었다. 인문학이라긴 뭐하지만,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연구에세이’, 태학출판사의 ‘태학산문선’,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문학과지성사의 ‘스펙트럼 총서‘, 도서출판 창해의 ‘ABC북’ 시리즈도 널리 익히는 문고판 중 하나이다.


“주 독자층이 대학생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서점 등의 판매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30~40대 등에서 고루 사랑받는다. 시대의 변화를 읽기 위한 욕구에는 세대의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그는 “인문서가 잘 안 팔린다. 하지만 인문교양의 수요는 분명히 성장할 것이라고 기획 단계에서 생각했다. 그 방법으로 나온 것이 얇고 가볍고 싸고 쉬운 시리즈였다”고 살림지식총서 기획의 변을 밝혔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의 ‘이와나미문고’와 프랑스의 ‘끄세즈문고’는 각각 일본과 프랑스 출판계를 대표하는 장수 문고판 이름이다. 1927년 첫 책을 낸 이와나미문고는 총 5200종을 넘겨 현재도 계속 출간되고 있고, 1941년 시작한 끄세즈문고도 3700권을 넘어섰다. 1841년 탄생해 100여 년간 5290종을 펴낸 독일의 타우흐니츠문고나 우리에게도 친숙한 영국의 ‘펭귄문고’도 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창간 5돌을 맞이한 '신초신서'는 시리즈물의 쌍두마차 격인 <바보의 벽>이 426만부, <국가의 품격>이 260만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저렴한 가격, 사용의 간편함, 내용의 전문성, 간결성, 충실한 라인업, 다양성 등을 장점으로 해 불황기 독자의 관심을 증폭시킨 신서는 신문기사의 시의성과 학술논문의 깊이를 절충한, 곧 교양과 아카데미즘을 접목한 중간 형태의 글을 담는다고 한다.

부담없는 가격에 가벼운 분량으로 인문학 서적이 생활 속 가까이로 걸어들어 온 점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여러 출판사들의 이런 시도가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기를, 그리고 우리사회에도 인문학의 불을 지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획위원 진형준 교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는다’는 취지로 시작한 살림지식총서는 좀 더 설명이 자상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며 “지식 사회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온 축적된 지식을 쉽게 풀어 일반인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철학, 혁명 같은 고답적 분야부터 스포츠, 영화, 힙합, 살사, 디지털 게임까지 광범한 기획 스펙트럼이 이를 반증한다.



출판사 홈페이지: http://www.sallimbooks.com/
관련기사 스크랩: http://blog.naver.com/jminbae/110033682811
참고로 본인은 달랑 1권 책 읽은 것 밖에는 살림출판사와 아무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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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The Greeks 
H.D.F키토| 박재욱 역| 갈라파고스| 2008.02.22 | 386p | ISBN : 9788990809216
 

옛날에 수백 년에 걸쳐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어떤 세계가 있었다. 그 문명의 한 편에서 어떤 사람들이 서서히 등장했다. 이들은 수도 별로 많지 않았고, 힘도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잘 짜인 조직을 갖추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들은 인생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했고,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온전히 구사했다. (.....) 적어도 고전기 그리스인은 습관적으로 인류를 '헬레네스'(Hellenes, 그리스인 스스로를 부루는 이름)와 '바르바로이'(barbaroi, 이방인을 뜻하는 barbaros의 복수형)로 나누었다.
p9
오리엔트는 유서 깊은 문명으로서 실용적인 일에는 극도로 효율적이었고, 때로는 예술에서도 그리스인에게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성적으로는 빈약했다. 수백 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이루었는가? 아무것도 없다. 각 세대의 경험은 순전히 실용적인 측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그 세대와 함께 죽어 없어졌다. (.....) 그러나 소설을 제외한 그 외의 모든 학문 형식은 그리스인에 의해 창조되고 완성되었다. '바르바로이'의 역사 연대기와 투키디데스의 역사서는 아이와 어른만큼 차이가 난다. 어른은 이해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것을 타인이 활용하도록 돕는다. 서사시, 역사와 희곡, 물리학에서 경제학에 이르는 전 분야의 철학, 수학과 수많은 자연과학, 이 모든 것은 그리스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P11


저자는 가능한 한 고대 그리스인이 그들에 대해 스스로 말하게 하도록 애썼고, 이 책을 통해 매우 선명하고 균형 잡힌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를 바랬고, 이 책은 그 역할을 톡톡이 해내고 있다. 많은 그림과 도표, 모식도를 보여주는 교과서는 아니지만, 오히려 고대 그리스인을 고대 그리스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잘 짜여진 한 학기의 강의를 듣는 듯 하다.

1951년대 저작인 만큼 근래의 해설서나 다큐멘터리에 비해 그리스인에 대해 다소 찬양적이고 편파적인 해석도 보인다. 또한 오리엔트문명에 대한 서구문명의 우월감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H. D. F 키토의 The Greeks는 타임즈가 부고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뛰어난 고전기 그리스 입문서이며, 고전기 그리스 연구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쳤고 또 지금도 끼치고 있다.' 이렇듯 이 저작이 이후 출간된 많은 논문과 그리스 문화 해설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대로 그리스가 어떻게 형성이 되어, 이후 어떠한 배경에서 고전기에 접어들었고 찬란했던 폴리스 문화을 꽃피웠는지, 그리고 아테네 민주정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흥망성쇠, 폴리스의 몰락을 찬찬히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그리스 정신이 후대에 남긴 것과 난폭하고 호색한으로 그려진 그리스 신들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여성, 노동, 복수에 대한 생각을 서술하며 책을 마친다.

그리스 문학의 정수인 '일리야스'에 대해서는 따로 단원을 두어 그리스 문학의 특징과 의미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특히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민주정이 아니라 고전기 아테네로 돌아가 그들에게 폴리스의 의미와 성립 배경, 그리고 기록되어 전해지는 여러 논쟁들을 통해 아테네 민주정을 많은 지면에 걸쳐 복원하려고 애쓰고 있다. 2500년 전의 노예, 식민지, 폴리스, 국가의 개념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들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국가는 결코 아테네 폴리스가 기원전 6세기, 5세기, 4세기와 그 이후 시대까지도 했듯이 구성원들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 그러나 나는 사회적 문제들을 어린아이나 광신도처럼 폭력으로 해결하지 않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루려고 했던 아테네인의 전반적인 경향이 그러한 천재성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번 아테네인이 이렇게 행동하는 모습을 본다. 특권계급은 열린 마음으로 논쟁을 받아들였고, 대개 법원의 판결을 충실히 수용했다. 아테네인의 삶에는 공동의 이익, 즉 '토 코이논'(To koinon)에 대한 생각이 깊이 배여 있었다.
P149

아테네의 일반적인 상식은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를 통해 천재성에 이르렀고, 아테네 귀족은 자신의 아레테를 여전히 원기왕성하게 유지하면서 진심으로 민주정 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 두 세대 동안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들은 대부분 최고 가문 출신이었다. 페리클레스가 가장 두드러진 예다. 이는 근대 프랑스와 대조를 이룬다. 그곳에서는 오래전에 쓸모없어진 귀족이 단두대에서 사라져야 했고, 그 결과 남은 귀족들은 기여할 능력이 있든 없든 간에 공화정 프랑스를 경멸하며 거리를 두었다. 문화적 영역에서는, 아테네 주민들은 신선함과 창조력을 보유한 채로 귀족 문화에 편입되었다.
P163

첫 번째로, 그리스에서는 농업노예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전승들은 자신의 땅과 노예를 소유한 시민이 소규모 영농에서 노예제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노예는 자신이 생산하는 만큼 먹어 치웠다. 도시에 사는 부유한 농부라면 노예를 몇 명 소유했는데, 이들은 주로 개인적인 수발이나 가사에 이용되었다. (...) 이들 덕분에 생활은 좀 더 편해졌고, 어느 정도 문명화도 촉진되었다. 마치 하인들 덕분에 영국의 중간 계급 여성들이 오후에 브리지 게임을 하고, 교수들이 책을 썼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노예는 분명 아티카의 경제적 삶의 토대가 아니었다.
P197


호메루스의 '일리야스'라든지, 페리클레스의 '전몰 용사를 위한 추도문'를 비롯하여 책의 여러 곳에 인용된 각종 인용문들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놀란 부분은 무려 2500년 전의 문학작품, 연설문, 문답구조가 지금 우리가 읽어서도 생생하게 전달되고, 호소력이 있으며 상당히 논리가 정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상은 여태껏 내가 고대 문학을 접하면서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놀라운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전기'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저, 살림)에 잘 설명된 것 같아 아래와 같이 인용하였다.
 

흔히 '고전적'이란 말은 가장 성숙하고 가장 뛰어난 문화적 산물을 만들어낸 것을 의미한다. 헬라스에서 기원전 5~4세기, 특히 페리클레스의 시기를 그렇게 부른다. 이 시기는 문명의 최고 정점을 이루던 시기였다. (....)
만일 '고전적'이란 말이 부분들과의 중용, 절제, 조화, 균형과 같은 어떤 특징을 가지는 문화, 예술, 시 등을 의미한다면, 기원전 4~5세기의 헬라스 예술과 시는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이라 할 수 있다. 고전기의 예술과 시에서 드러나는 절제와 조화, 균형을 목표로 하는 문명의 기준은 뒤에 이어지는 모든 시대의 모델이 되었다. 이후 유럽 문명의 발전 가운데 '고전주의'라고 이름 붙이는 기준이 되는 시기가 바로 헬라스의 고전기였다.

p9, 그리스 사유의 기원, 김재홍 저,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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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Dictionnaire de la mythologie grecque et romaine 
피에르 그리말| 최애리 역| 열린책들| 2003.11.10 | 859p | ISBN : 893290524X 


올 여름 그리스 여행을 앞두고 고대 그리스에 대해 나름의 공부를 하고 있다.
그 중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도 한 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서 서점에서 몇 종류의 서적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1. 신통기 (그리스 신들의 계보) Theogonia, 헤시오도스| 김원익 역| 민음사| 2003.11.25 | 202p
막상 구입하고 나니.. 처음으로 동시대에 계보가 정리된 것 외에는 크게 볼만한 내용은 없음.

2.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총4권), 이윤기| 웅진씽크빅| 2000.06.01 | 351p
베스트셀러였고, 집에 2권이 있던데.. 그림과 삽화가 많고, 깊이가 느껴지지 않음. 다소 주관적이란 느낌도..

3. 그리스 로마 신화 The Age of Fable, 토마스 불핀치| 최혁순 역| 범우사| 2000.09.01 | 527p
중학생때 읽었던 책이 이 책인데.. 나쁘지 않았으나 이야기책보다는 원전을 찾고자 하였음.

4. 그리스 신화 (총8권),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이경혜 역| 열림원| 2002.08.05 | 242p
얇은 책 8권으로, 그리스인이 스무해 이상 연구 한 바를 책으로 폈다고 하는데 폭넓게 다르고 있기보다는 몇 가지 주제에 더 집중되어 있는 느낌 (일리아드, 율리시스, 헤라클레서, 올림푸스의 신들 등)이어서 제외.

5.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 피에르 그리말| 최애리 역| 열린책들| 2003.11.10 | 859p
한시간 동안 고르고 골라 결정된 책. 가격이 35,000원으로 다른 서적에 비해 고가이나 원전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풍성한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음.

이 사전은 고대 문학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인요되고 사용되는 전설 및 신화들의 편리한 목록이 되고자 하는 것 외에 다른 야심이 없다. ... 이 책은 설명적 체계 없이도 이미 방대할 뿐 아니라, 관련 연구들이 부단히 진척됨에 따라 평자의 관점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체계들은 낡게 마련이며 때로는 아주 빨리 낡아 버린다. 단지 원전의 전거들만이 변하지 않는다.

<서문> 中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은 총 1,800여 개의 표제어를 다루고 있고, 내용도 충실하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체를 총망라하고 있다. 1951년 처음 출간되어 1996년 13판까지 나왔는데, 이 책은 13판을 저본으로 하여 번역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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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혹은 영웅들의 출생(혹은 가계도)과 성장, 사건 및 사망까지 신화의 여러 전승에서 언급되고 있는 모든 것을 망라하려고 하였으며, 때로 이들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서로 다른 모든 사항을 언급해 두고 있다. 그 분량부터가 방대한데, 예를 들면, 헬레네는 6쪽,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는 4쪽,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7쪽, 고전 신화에서 가장 유명하고 있기 있는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무려 23쪽에 달한다. 참고로 인간이 나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였기도 한 헬레네 편을 살짝 엿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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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기'만 무려 106페이지에 이르며(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척 자세하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계보도도 40개(흠. 신화 공부하면서 내가 찾던 것 중 하나)나 실려있다. 아래 사진은 색인의 아킬레우스 편의 일부만 촬영한 것이고, 그 밑에는 최근에 가장 관심있게 읽은 <일리야드>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아가멤논의 가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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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으로 범우사에서 1993년 출간된 M. 그랜트의 <Gods and mortals in classical mythology>(p.632)이 있던데 서점에서 찾아보지 못했다.

하여간 웬만큼 그리스 신화에 대해 알고 있다면 좀 더 명확한 정리와 고증을 위해 이 사전을 하나 장만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나는 대만족!

/ 혹시 이 글 보신 분들 중에 궁금하신 가계도 있으신 분은 연락주세요. 특별히 바쁜 사정 아니라면 사진찍어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른 책에서 본 것이지만,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왜 그렇게 호색한인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옮겨본다.


먼저 있던 신이 여신인 경우가 매우 많았다. 그 경우 여신은 자연스럽게 새로인 도래한 신의 아내가 되었다. 만약 먼저 있던 신이 히안킨토스처럼 남신이라면, 그는 자신을 밀어낸 자의 아들이 되었다. 그 경우에는 어머니가 필요하고, 그 역할은 지역의 요정이나 여신이 맡았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매우 순수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일들이 그리스인이 정착한 수많은 골짜기들과 섬들에서 벌어지면서, 또 이들 지역에서 내몰린 신들이 점점 더 제우스나 아폴론과 동일시되면서, 제우스와 아폴론이 은총을 입은 많은 여신들, 요정들, 인간 여인들에게서 엄청난 수의 후손을 낳은 셈이 되었다. 신의 호색은 그 신화들의 뜻하지 않은 우연적 결과였다. 이것이 종교적 감수성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것이 오직 해설일 뿐임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권위적이고 교리적이고 교육적인 가르침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직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p301,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 The Greeks, H. D. F 키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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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은 있어도 경영자는 없다 
박개성| 엘리오앤컴퍼니| 2006.04.15 | 286p | ISBN : 8995326336 


앞으로는 의사출신 여부와 관계없이, 전문경영인이 명성을 떨치는 시대가 반드시 도래한다고 이 책은 시작한다. 의사이든, 아니든 병원경영을 잘 할 수 있는 경영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불붙는 것이다. 결국 병원장을 하려고 하는 분명한 목표와 열정, 그리고 자질이 있는 사람이 병원장이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병원장이란 자리는 평생 근무했던 조직의 최고자리를 말년에 획득했다는 데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떤 전문경영인에게 언제 가장 보람있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사장이 되었을 때"라는 대답이 맞는가, 아니면 "회사가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게 되었을 때"라는 대답이 맞는가를 잘 생각해 보라고 저자는 묻는다. "나는 병원장이기 이전에 의사"라는 말은 경영이라는 부분을 하나의 감투로 생각하고, 경영자라는 본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어느 병원장을 뵙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약속시간보다 약 30분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수술이 예정보다 40분이나 더 걸렸다며 미안하다는 뜻도 전했다. 당시 그 병원은 파업상태에 있었다. 수술 때문에 늦는 것은 불가피한 사유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저자에게보다 직원들에게 해야 할 듯했다. 병원이 파업 중인데 경영자가 수술을 하고 있는 풍경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이다. 파업을 '하루'했을 때, 진료수익은 물론 브랜드 손상까지 감안하면 천문학적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가 할 일은, 수술보다는 노조를 설득하기 위해 팔방으로 뛰는 것이다. (p39)

미국의 경우에는 비의료인 출신의 병원경영자가 40%내외를 차지하고 있고, 의료인 출신 병원장 중에도 MBA를 이수한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이는 우리의 미래상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전문경영인 틈바구니 속에서도 50%이상 의사 출신들이 병원장을 맡고 있는 것은 의사라는 메리트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전작인 '공동개원 절대로 하지마라'에서도 역설했다싶이 탁월한 기업(혹은 병원)은 돈이 아니라 그들의 미션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이윤은 사람의 건강과 같아서 기업 존재의 필수조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익과 함께 그 기업이 추구하려는 핵심가치와 목적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월마트 등 여러 우수한 기업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경영은 돈을 벌기 위한 테크닉이 아니라, 조직으로 하여금 병원의 이상과 뜻을 세우고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진병원의 비전(바람직한 미래상)과 미션에 대해 집어 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존스홉킨스 병원의 미션 p.161
1. 질병 예방, 진단, 치료에 있어서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서비스를 제공한다.
2. 건강유지를 위하여 생물학적 연구와 의학지식의 응용분야에서 의사 및 의학자 교육을 위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한다.
3. 최고의 인격과 최상의 실력을 갖춘 의사와 의료 전문가를 양성, 지원한다.
4. 최상의 진료와 정신적 위안을 증진시키기 위한 서비스와 시설을 제공한다.

본 책은 의료인을 대상으로 경영의 필요성(혹은 중요성)과 리더십의 종류, 탁월한 경영자의 조건, 병원 CEO의 영원한 숙제, 리더십 토양 만들기, 경영을 배우는 방법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비된 병원장이 취임에서 퇴임까지의 매해 신경써야할 것들을(가상이지만) 설명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은 우호적이지 않고 의료환경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의사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수많은 병원들이 개원을 하고 증측을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노조의 위협이나 까다로운 환자들은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이 땅의 모든 병원들에게 동등하게 처해진 현실이며, 이 중 도태되는 병원도 앞서나가는 병원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환경이 악화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일수록 경영의 힘이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미래는 준비하는 자(병원)의 것이다.

어찌보면 새로울 것 없는 경영학 일반을 의료환경에 단순 적용시킨 경영서적일 수도 있겠으나 크고 작은 병원 경영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에게 - 저자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이 병원장 뿐아니라, 수많은 중간 리더들에게도 - 지금껏 없었던 지침서이자, 병원경영의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 점검을 위한 설문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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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에서 가장 훌륭한 경영자가 누구냐에 대한 설문

1. 윤덕선 한림대의료원 창립자
1. 박용현 전 서울대병원장
3. 김효규 전 연세의료원장
3. 백낙환 인제대학교 백병원 이사장

* 존경하는 이유: '경영성과와 혁신적인 마인드 때문'(90%)
                        훌륭한 인품, 의학적 성과 그리고 명성(다 합쳐서 10%)


탁월한 병원경영자의 조건

첫째, 높은 성과를 내어야 한다.
둘째, 주위에 좋은 영향을 준다.
셋째, 장기적 성장을 위한 잠재력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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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가져야할 7가지 자질


1. GE의 P+4E
: 열정(passion)이 근본, 그리고 에너지(Energy), 동기부여(Energize), 결단력(Edge), 실행력(Execution)

2. 짐 콜린스의 7가지 자질
: 참됨, 단호함, 집중력, 대안관계, 강하면서 부드럽게 사람을 다루는 기술, 의사소통, 진취성

3. 저자의 제시하는 7가지 자질
: 열정, 솔선수범, 결단력, 집중력, 활성력, 추진력, 자기수양


          어쨌든 가장 근본은 열정(Passion)




자신을 기존의 세상에 묶어두며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는 대표적인 편견

1. 경영의 목적은 돈이다.
2. 공익을 위해서는 이익을 생각하면 안된다.
3. 고객은 의료의 질을 파악할 수 없다.
4. 경영은 상식으로 하면 된다.
5. 경영에도 족보가 있다.



함께 읽은 책 (읽다보니 가장 마지막에 읽은 이 책을 먼저 포스트하게 되었음)

병원은 많아도 의료산업은 없다, 박개성| 엘리오앤컴퍼니| 2007.09.10 | 391p | ISBN : 9788995326343 
공동 개원 절대로 하지 마라, 박개성| 가립회계법인| 2003.02.15 | 381p | ISBN : 8995326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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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받는 기업 발렌베리家의 신화 
장승규| 새로운제안| 2006.04.20 | 200p | ISBN : 8955331924


스웨덴 내 발렌베리 그룹의 영향력

일단 발렌베리 그룹의 영향력부터 알아보자. 발렌베리의 자회사들은 스톡홀름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스톡홀름증권거래소 자체도 발렌베리의 소유),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발렌베리가 차지하고 있다. 경제적 영향력 외에도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왕가, 집권당인 사회민주당 지도부, 주요 노조지도자들과도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스톡홀름 경제대학('발렌베리대학'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함)을 세웠으며 스웨덴 최대 상업방송인 TV4와 스톡홀름 2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를 한때 직접 소유하기도 했다.

발렌베리는 모두 14개 기업을 핵심자회사로 소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에릭슨을 비롯한 11개 기업은 지주회사인 인베스터를 통해, 스토라엔소 등 나머지 3개 기업은 발렌베리재단을 통해 지배권을 행사한다. 이 가운데 무려 5개 기업이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에릭슨(통신장비분야), ABB(발전설비), 일렉트로룩스(가전제품), 스토라엔소(제지), SKF(베어링) 등이다. 그외 유명 자회사로는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위궤양약 '로섹'을 개발하여 단일품목으로 세계판매 1위를 기록했고, 세계적 항공기 제조업체인 사브는 차세대 전투기 그린펜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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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베리 그룹의 역사

발렌베리가는 지난 2003년 여름, 삼성 이건희 회장이 스웨덴의 발렌베리가를 전격 방문한 이후,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무려 150년 동안 5대에 걸쳐 번영을 누리고 있는 스웨덴의 '대재벌'이다. 1856년, 앙드레 오스카 발렌베리는 후에 발렌베리 왕국의 모태가 된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tockholms Enskilda Bank)를 열었다. 이 은행은 지주들을 상대로 은행권을 찍어내던 기존 은행들과는 달리 '은행이 빵집처럼 사람들이 돈을 예금하기 위해 매일 들르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앙드레의 뜻대로 예금을 중시하는 근대적인 은행을 표방하였다.

앙드레의 은행은 이후 몇 번의 커다란 경제 호황과 위기 속에서 스웨덴 '제2의 군주'라는 칭호를 얻을만큼 성공을 거두었고, 불황 속에서 경영난에 봉착한 진주같은 회사를 자회사로 사들여 장기적인 투자로 거대한 산업왕국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우량기업을 건져낸 것뿐 아니라 예를 들면, 1910~1920년대에 주식시장에 걷잡을 수 없는 투기붐이 일자,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은 추가적인 투자를 억제하고 기존 기업의 구조조정에 주력하는 보수적인 정책으로 재빨리 전환하는 등 신중한 정책으로 기회를 잡는데 힘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Esse non videri)'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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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당과의 오랜 공조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00년대 초반부터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나라로, 1932년 처음 집권에 성공한 사회민주당은 스웨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대기업들을 국유화하는 대신 이들의 기득권을 인정해 줌으로써 이들과의 공조를 선택했다. 발렌베리 왕국을 지탱하는 소유지배구조를 보면 재단-지주회사-자회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와 '차등의결권'이 그 핵심이며, 사회민주당은 이 두 가지를 허용함으로써 발렌베리의 성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리고 스웨덴의 다른 재벌기업들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스위스 등지로 빠져나가는 동안 발렌베리는 노벨재단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공익재단을 만들어 고국 스웨덴의 첨단 과학기술연구를 후원하였다.


삼성과의 차이점에 대한 나의 생각

1. 발렌베리그룹은 금산분리가 되어있지 않아 금융자본이 그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경제싸이클을 통해 우량 기업을 하나씩 소유해나가는 형태로 기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투자자로서 기업의 성장성을 보는 안목이나 경영능력도 높이 평가받아야 하겠지만, 이는 맨손으로 회사를 일군 기업가 정신과는 구별되야할 것이다.

2. 스웨덴의 차등의결권, 스웨덴에서는 1주에 1표의 의결권이 주어지는 A주와 1주에 1/10에서 1/1000의 의결권이 주어지는 B주를 두는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당연히 기업의 확장국면에서 기존 소유주가 지배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고 발렌베리 그룹이 그 최대 수혜자이다. 삼성그룹의 확장기에 이런 차등의결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기형적이라 할 수 있는 순환출자구조가 성립된 것을 지금의 결과만 놓고 우열을 가르기는 힘들 것이다.

3. 지분이 아니라 능력? 삼성을 일군 이병철 창업주나 일류기업으로 도약시킨 이건희 회장의 경영능력은 종종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그쪽의 정통한 연구자는 아니지만, 발렌베리 그룹의 경영자도 한국의 기업을 맡아 지금의 삼성의 자리에 올려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렌베리그룹과의 비교는 충분히 곱씹어 생각해봐야 할 의미가 있으며, 스웨덴의 미래에 벨렌베리그룹의 역할이 존재하듯이 대한민국의 앞날에도 삼성그룹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008년의 현재에서 삼성의 공과 실을 구분해야겠지만, 삼성그룹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애정과 연구,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5.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은 나의 큰 관심사인데 이 책은 자본주의가 복지국가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젠 본격적으로 핀란드와 덴마크를 연구해 볼 차례..


관심 있는 다음 책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 리처드 D. 루이스| 박미준 역| 살림| 2008.04.29 | 327p | ISBN : 9788952208866 

개념어 사전, 남경태 저

2008.07.27 01:14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념어 사전
 
남경태| 들녘| 2006.11.13 | 452p | ISBN : 8975275582


개념어 사전은 154개의 개념어를 표제어로 하여 '고삐 풀린 망아지가 종횡무진 초원을 누비듯이 한 개인이 지적 세계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겪고 부딪힌 개념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대부분 철학과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용어들이고, 물리학이나 의학을 비롯한 과학이나 시사로 분류될 만한 개념들도 인문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졌다. 이 책은 비록 '사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저자는 각 개념의 사전적 정의보다는 그 이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가나다순으로 엮어져 있으나 각개가 하나의 칼럼을 읽는 기분이며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고리를 갖추고 있다.

하나의 개념은 그 개념에 딸린 여러 가지 속성들의 요약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라는 개념에는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발전하고 변형되어온 과정, 경제제도로서 가지는 여러 가지 특성 등이 요약되어 있다(그런 점에서, 이론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한다면 개념은 본문이 아니라 차례다) 그러므로 개념을 이해할 때는 사전적 정의보다 그 개념에 관한 전반적 이미지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똑같은 개념이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머릿말 中

저자는 경제학의 조류와 철학사조, 종교와 예술 등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풀어내고 있으며,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배경과 의의, 현대에서의 해석에 대해 많은 주제 밑에서 반복하여 다루고 있는데 이는 편향이 아닌 오히려 균형이라 생각된다.

꽤 오랫동안 실용서적이나 역사서만 읽다가 돌아와서인지 문장들이 미려하고 짜임새가 견고해서 주말내내 저자 남경태의 세계관를 엿보는데 푹 빠져있을 수 있었다. 정치, 경제, 철학의 주요주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훑고 있어서 한창 공부하는 고등학생에게 추천하고 싶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들이 쓸데없는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현대국가에서 정치권력은 양면성을 지닌다. 한편으로는 국가와 사회의 존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력은 합법적으로 발동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부각되기 어렵다. 독재 국가에서 국민의 일부가 정부에 반대하는 행동을 취할 경우 정치권력은 그것을 반역 행위로 몰아 폭력적으로 진압하는데, 대개 그 과정은 합법서의 외피를 쓰고 있으므로 정부의 법적 책임이 면제된다(도덕적, 역사적 책임은 별개다).
권력Power 中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성숙도가 미약하지만 그 대신 차르 체제의 가혹한 억압이 있었다. 그래서 레닌은 러시아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끝끝내 사회주의 신생국의 질곡이 되었다. 혁명에 성공한 소비에트 정권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해야 했고, 정치권력의 안정성을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해야 했다.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실험이 불과 한 세기도 못 버티고 실패로 끝난 이유는 애초에 기형적인 혁명으로 시작된 탓이다.
약한 고리Weak Link 中

들뢰즈와 가타리는 그 세 단계의 역사적 사회 체제에 각각 정신적 장애를 대입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욕망과 대상이 일체화되는 도착증이 생겨나고, 고대사회에서는 욕망이 하나의 대상으로 집중되는 편집증이 일어난다. 그리고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병행되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분열증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는 분열증이 비정상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정상적인 사회이다. 이런 자본주의의 이중적이고 분열증적인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Internet 中


다루고 있는 개념어

ㄱ  가상현실 | 가치 | 감각 | 감정 | 개념 | 경험 | 계급 | 계급의식 | 계몽주의 | 고독한 군중 | 공동체 | 공리주의 | 관념론 | 관료제 | 관용 | 관음증 | 교양 | 구조주의 | 국가 | 권력 | 귀납/연역 | 그리스도교 | 근본주의 | 근친상간 | 기시감 | 기호
ㄴ  농업혁명 | 노동
ㄷ  달력 | 담론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도 | 동일자/타자 | 디아스포라
ㄹ  레세페르 | 리비도
ㅁ  마녀사냥 | 마르크스주의 | 모노가미/폴리가미 | 모더니즘 | 모순 | 목적론 | 뫼비우스의 띠 | 무의식 | 문화권력 | 문화상대주의 | 문화제국주의 | 물신성 | 물자체 | 미네르바의 부엉이 | 미디어 | 미메시스 | 미장센 | 민족주의
ㅂ  변증법 | 보이지 않는 손 | 불확정성 원리 | 빅뱅 | 빅브라더 | 빨치산
ㅅ  사관 | 사서 | 사실주의 | 사차원 | 사회계약 | 사회구성체 | 사회주의/공산주의 | 삼위일체 | 상대성 | 상품 | 상호주관성 | 생산 |  생체권력 | 성서 | 소수자 | 소외 | 식민사관 | 신 | 신분 | 신자유주의 | 신화 | 실존 | 심포지엄
ㅇ  아니마/아니무스 | 아비튀스 | 아폴론형/디오니소스형 |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 | 앙시앵레짐 | 약한 고리 | 엄숙주의 | 에로스/타나토스 | 에로티시즘 | 엔트로피 | 역설 | 연금술 | 예술 | 오리엔탈리즘 | 오컴의 면도날 | 와스프 | 욕망 | 원형 | 유물론 | 유토피아/디스토피아 | 이기적 유전자 | 이데올로기 | 이드 | 이성 | 이원론 | 인식론/존재론 | 인터넷
ㅈ  자본주의 | 자유 | 장기지속 | 절대정신 | 제국주의 | 제로섬 | 제3의 물결 | 젠더 | 종말론 | 좌익/우익 | 주관/객관 | 주체사상 | 진화론 | 질풍노도
ㅊ  차이 | 착취 | 창조론
ㅋ  카오스 | 코기토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콤플렉스 | 클리셰 | 키치
ㅌ  타불라 라사 | 트라우마
ㅍ  파시즘 | 패러다임 | 패러디 | 페르소나 | 페미니즘 | 포스트모더니즘 | 플라토닉 러브
ㅎ  하위문화 | 하이브리드 | 해체 | 헤게모니 | 혁명 | 현존재 | 형이상학 | 호모 루덴스 | 홀로코스트 | 환경


내가 읽은 저자의 다른 책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 황소걸음| 2001.07.15 | 326p | ISBN : 8989370094 
종횡무진 서양사, 남경태| 그린비| 1999.12.17 | 688p | ISBN : 8976820509 

관심있는 저자의 다른 책
교양인을 위한 바이블 키워드,  J. 스티븐 랭| 남경태 역| 들녘| 2007.12.24 | 568p | ISBN : 9788975275913 

관련자료
“고전 곱씹어 읽고 개념을 엮는 글 써보세요” 논술 교양서 펴낸 남경태씨의 잘 읽고 잘 쓰는 법,  중앙, 08-3-5
http://blog.naver.com/jminbae/110033374526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정승일| 부키| 2005.07.18 | 240p


집에서 빈둥대다가 굴러다니던 책을 집어 들었는데, 의외로 값진 놈을 하나 건졌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와 국민대 경제학부 정승일 교수의 좌담을 ‘말’지의 이종태씨가 엮었다. 장하준 교수의 아홉 번째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Bad samaritans)’이 미국에서 경제학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뉴스를 듣고 부쩍 관심을 가지던 차였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 체제를 인정하고, 국가의 개입을 옹호하면서 노조 편을 들기도 하고, 자본 시장 자유화를 극렬하게 비판하는 등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보수, 진보, 수구, 극좌 민족주의자의 딱지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기존의 시각과 지식들로는 한국 경제 상황의 ‘복잡한’ 처지를 설명하기 부족하단다. 그리고 널리 논쟁이 되고, 흔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주제들 – 박정희의 경제발전에 대한 평가, 재벌 체제에 대한 견해, 신자유주의의 본질, 남미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차이, IMF 외환위기에 관한 해석, 영미식 자유 시장 경제와 북유럽식 복지국가모델에 대한 분석, 현재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혼선 등에 대해 저자들은 차분하고 일관성 있게, 때로는 명쾌하게 하나씩 풀어내 준다.

저투자, 저성장, 고용불안를 보이는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는 자본주의가 성숙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너무 잘 바뀐 결과라고 설명한다. 주주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적대적 M&A에 노출되어 있으니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게 되어 저성장이 지속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고용이 불안하니 같은 수입으로도 돈을 쓸 수 없고, 또 고급기술을 익히기 보다는 해고 당하기 전에 (노동운동을 통해) 월급을 인상하는 게 더 절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투자, 저성장의 기조는 금융시장이 개방된 다른 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주식시장 활성화 이후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에 흘러가는 돈보다 자사주 매입 등으로 기업에서 주식시장으로 들어간 돈이 더 많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재벌 그룹의 해체가 한국 경제의 해답일 수는 없다. 국적없는 자본이 주주들의 이득에는 충실할 것이나, 국민경제와 국가의 산업에 얼마나 이바지할 것인지는 사실 상식적으로도 헤아리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고 재벌이 선(善)이라는 주장도 아니다. 외국 자본에 비해 어느 정도 사회적 통제의 범위에 있으며,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전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 해도 눈치는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재벌은 특정 가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산물이므로 국가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일본, 스웨덴, 핀란드 같은 사례를 들어 막연하게나마 우리 경제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이 나라들의 경우 한국의 재벌 비슷한 것이 존재하지만 사회적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와 복지를 실현했고, 산업 정책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사회 경제적 성과를 올려왔다. 이는 자유 시장 경제가 아닌 일종의 사회주의적인 시장 경제 시스템을 통해 가능했다. 한편으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구분할 것을 역설하는데, 본래 민주주의란 민중이 가진자(자유주의자)들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쟁취한 것으로 반독재, 반재벌은 민주주의를 뜻하지, 신자유주의를 일컫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금융시장은 모두 개방되었고, 자본시장 통합법도 2009년 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은행과 산업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은 이미 외국인 지분이 50%이상이고, 산업은행도 곧 민영화가 된다. 금융시장의 동북아 허브를 향해 달려가는 작금의 모습에는 시장주의에 대한 맹신이 깔려있다. 그러나 영미식의 금융제도를 전적으로 도입한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금융의 동북아 허브가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금융시장의 성장이 국내 산업과 우리들 미래에 약이 될 지도 미지수다. 이런 면에서 장하준, 정승일 교수의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다만 책을 읽는 동안 해결되지 않는 궁금증은 미국을 위시로 한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우리가 이를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물줄기가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격동의 시대’를 통해 앨런 그린스펀의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에 한동안 심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 많은 부분 동감이 간다. 학부 때 읽고 세미나도 많이 하던 ‘세계화의 덫’과 사뭇 다른 느낌인 것은 한국인 경제학자가 한국경제에 대해 토론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좌담의 형식은 덜 실증적일지는 몰라도 보다 허심탄회한 느낌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온다. 어쨌든 논쟁적인 책. 여담이지만 장하준 교수는 고려대 장하성 교수의 사촌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둘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려 있는 듯싶다.



밑줄 그으며 책읽기 http://blog.naver.com/jminbae/110030069701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정재곤 역| 세상사람들의책| 2002.08.18 | 381p 


"인간이 달에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기존 관념을 뒤엎는 날카로운 통찰, 그리고 이를 현실 세계에서 증명해 보인 불굴의 신념.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펴들었던 한 권의 책은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의 소설과도 같은 위대한 삶에 흠뻑 빠져들게 하였다. 한 사람의 이상이 공상으로 끝나지 않고, 주위의 비웃음과 척박한 현실 속에 뿌리내려 거대한 숲을 이루는 이야기.내가 즐겨읽는 성공스토리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타잎이다. 그것도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는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

"나는 머지않아 '가난'이란 말이 의미를 상실하고 박물관에나 전시되는 과거의 유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 때가 되면 박물관을 찾은 우리의 아이들이 어째서 이토록 끔찍한 참상을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었는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신념에 관한 이야기이며, 편견에 대한 도전의 기록이다. 또한 이 책은 전세계로부터 가난을 몰아내자는 원대한 희망의 메세지이며, 한 은행의 역사를 통해 그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언이다. 우리도 이 책을 통해 함께 꿈꿀 권리가 있다.





예스24 책소개 

누군가 가난한 사람에게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을 만든다고 하면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즉 오로지 신용만을 믿고 돈을 빌려준다. 이 은행은 방글라데시 전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만 명에게 약 3조 3천6억 원을 융자해주고 있으며 100%에 가까운 대출 상황율을 유지하여 93년 이후 흑자로 돌아선 튼튼한 금융기관이다.
대학 강단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가 굶어죽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에 환멸을 느껴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해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 저자는 기존의 편견에 맞서 싸워 스스로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가난을 이기기 위해서는 조건 없이 주어지는 단발성의 자선보다는 모든 경제활동의 출발점인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편안한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이념이 아닌 제도로 '가난'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온 저자의 진심어린 글들이 마음 깊숙히 와닿는다.
그라민 은행은 정말 가난한 사람만 골라서 담보없이 소액 대출을 해주고 있으며 돈을 갚지 않는다고 월급을 차압하는 등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렇게 위험한 영업방식을 택했지만 이 은행은 건재하게 살아남았고 방글라데시의 많은 사람들이 이 은행을 통해 빈곤층에서 벗어났다. 

 
리브로 책소개  

'소액신용융자'라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방글라데시 빈민층 만 명을 가난에서 구출한 은행이 있어 세계 언론의 호응과 찬사를 받고 있다. 바로 경제학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세운 그라민 은행. 이 책은 기존의 제도 금융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과 고정관념을 뒤엎고, 스스로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생각과 행동으로 보여 준 한 경제학자와 은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제도 금융기관으로부터 융자를 받기란 쉽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담보나 보증이 없을뿐 아니라 원금을 갚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신용은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에 불을 붙이기만 한다면 엄청난 잠재 능력이 발휘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신뢰는 98%에 달하는 높은 상환율로 보답받았고, 이제 그라민 은행으로 인해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성공은 사회적 목표를 가진 기업이 이윤 추구만을 꾀하는 어떤 기업과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바꿔준 그라민 은행, 가난은 박물관에나 가라고 외치는 유누스 총재가 보여주는 가난 없는 세상에 대한 핑크빛 희망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밑줄 그으며 책읽기

P42
외국 원조가 초래하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특수층, 다시 말해 '보다 잘 사는' 인구의 절반만 원조의 수혜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에 보다 가까운 이들만 이를 이용하여 더욱 더 부를 불려나갈 따름이다.

P49
거지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자기가 뭔가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거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지에게 돈을 주는 것은 거지로 하여금 그의 진짜 문제를 회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거지에게 돈을 줌으로써 잠시 흡족한 마음이 들지만, 그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거지에게는 그 때뿐이다. 하지만 그 상태가 얼마나 가겠는가?
적선은 적선을 받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거지는 바로 사람들의 적선 때문에 구걸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거지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나 의욕도 저버리기 일쑤다.
어떠한 경우든 간에 구걸하는 습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이다. 또한 구걸에 응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걸을 방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P54
지난해 세계은행 총재인 제임스 D. 울펜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액 융자 프로그램은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마을들과 그 마을 주민들에게 시장경제를 향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어 주었다. 가난 퇴치를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펼침으로써 수백만의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은 채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P151
어떤 사람은 우리 은행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군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덮어놓고 융자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 나의 입장을 고수하려고 한다. 운명을 개척하려면 굳은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난생 처음 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처음으로 원금을 갚을 때 무한한 기쁨을 느끼는데, 왜냐면 자기가 원금을 갚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가져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세 번째로 원금을 갚는다. 이들은 자긍심을 느끼고 자기에게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커다란 힘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라민 은행은 소액 융자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라민 은행은 사람들에게 자신 속에 잠재하고 있는 능력을 알게 하고 탐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은 자기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이제까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창조력을 발휘한다.

P155
- 일 년 상환
- 정해진 금액을 일 주일 단위로 상환
- 상환은 융자 후 일 주일 후부터 시작됨
- 연 대출 금리 20%
- 50주 동안 일 주일 단위 원금 상환 비율 2% 이상
- 1000타카를 융자할 경우, 일 주일 단위 대출 이자는 2타카이다.

P156
오늘날 대개의 은행들은 사람들이 돈을 빌린 후 도망을 가지나 않을까 의심을 하며, 변호사까지 동원하는 갖은 사법적 수단을 강구한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그라민 은행은 사람이 정직하다는 전제조건에서 출발을 한다. 행여 우리가 순진하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신념하에 엄청난 양의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수고를 덜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신뢰는 99%의 원금 상환율로 보답받고 있다.


P206
이들은 여전히 말하길, "그런 방법이 통하는 건 방글라데시 특유의 문화 때문"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그라민 은행은 발글라데시에 만연한 비문화적 요소들과 힘겹게 싸워야 했고, 그리하여 진정한 사회적 변혁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그라민 은행의 소액 융자 제도는 우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낡은 사고방식들과 맞부딪쳐야 했을 뿐 아니라, 지참금이나 조혼, 여성 학대와 같은 가장 고약한 악습들과도 싸워서 이겨야 했다.

P
"수입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버는 돈 절반은 쌀을 쓰는데 쓰고, 나머지 절반은 주인한테 줘야 합니다."
"주인이 누군데요?"
"당연히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을 빌려준 사람이지요."
무사라고 하는 구두닦이가 한 말은 내가 20년 전에 조브라 마을 사람들한테서 이미 들은 바 있는 자본의 부가가치에 대한 지적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이는 바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약간의 여유 돈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열망에 불을 지피는 데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에 대한 증언이었다. 이 사람에게 단돈 40달러의 여유 돈만 있으면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의 돈이 없는 이상, 그는 구두 통을 빌려 준 사람의 노예가 되어, 근근이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P259
그라민 프로젝트를 도입하고자 하는 유럽인들은 언제나 동일한 문제에 봉착한다. 유럽의 빈민들은 정부가 매월 지급하는 사회보장제도 지원금 때문에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하는 소액 융자에 관심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은행이 연대의식에 기반해서 소액 융자를 준다는 사실을 아주 기이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머리 속으로, 만일 자신이 사업주가 된다면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될 사회보장제도 지원금을 재빨리 계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선 마침내 소액 융자를 받을 필요가 없으리란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P284
가난한 사람들은 어리석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실상 이들 내부에는 엄청난 능력이 잠재해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고통과 모멸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연대 융자야말로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내부에 잠재해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일깨우게 만드는 수단이다.

 
P302
역설적인 얘기지만, 나는 미국의 반동주의자들이 도심의 빈민가 주민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때 그들의 입장에 심정적으로 찬동하는편이다. 이러한 내 생각이 충격적으로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사회 보조금은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보조금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처해 있는 문제를 오히려 망각하게 만들고, 자립의지를 꺾기 때문이다. 정신이 올바로 박힌 사람은 적선을 원치도 않으며 또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실업 수당도 이를 받는 사람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 자존심을 지키며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따름이다. 하지만 나는 미국 반동주의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이 자초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구조화되는 방식과 시행되는 정책에 의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P303
나는 그라민 은행 활동을 통해서 이윤 추구만이 자유주의의 유일한 원동력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는 사회적 목표라는 참 가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점을 잊지 않고 기업 활동을 통해 사회적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면 이윤 추구만을 꾀하는 그 어떤 기업과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란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P381
"인간은 라이트 형제가 12초 동안 공중을 날았던 이래 불과 65년 만에 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정상회담이 열린 오늘로부터 5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우리의 달에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가난없는 세상을 이룩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해야 합니다."

게으른 책 읽기

2008.07.20 12:47
어렵고 고상한 책을 즐긴다거나 독서량이 특별히 많다거나 혹은 속독에 능한 것도 아니지만, 학창 시절부터 대형서점에 가고 헌책방에 들락거리는 것은 내게 항상 즐거운 유희였다. 그렇다고 어릴 적부터 큰집에 있던 어려운 책들을 독파하던 사촌누이처럼 천성적인 독서가는 되지 못하였고, 독서의 커다란 즐거움보다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란게 있어 늘 책을 잡게 만드는 것 같다. 여하튼 이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이든 수필이든 항시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참여 하였던 동아리 중 하나도 "건강과 사회 연구회"인데, 이도 사회과학서적을 읽고는 싶은데 혼자서는 진득하게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까 학회활동을 통해 독서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이공계의 부족한 지적 능력을 키우고 싶었던게다. 이런 의도적인 책읽기도 과연 진정한 즐거움일까하는 의구심이 들던 차에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인터뷰는 좋은 해답이 되었다.

"그런 제게도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있습니다. 시간 때우기로는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재미로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로 따지자면 책 읽는 것보다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뭔가를 얻기 위한 독서습관이 필요합니다. 저의 경우엔 마조히스트적(피가학적)인 글 읽기를 하는 편입니다. 제가 보기에 좀 버거운 책을 고르는 거죠. 그렇게 점점 난해한 책을 읽다 보면 지적 욕구들이 해소되고 세상을 보는 눈도 커집니다.

시골의사 박경철, 신동아와의 인터뷰 中

레지던트 3년차가 되고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는 서재를 꾸미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서재는 오랜 시절 바뀌어온 주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보여주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책이랬다. 이제는 좋은 책은 소장하기로 했으니 예전처럼 발췌를 길게 해 둘 필요는 없어졌다. (네이버 블로그에 "밑줄 그으며 책읽기"라는 항목이 있는데 그건 이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에서 발췌해 둔 것이다") 그냥 간단한 감상이나 메모 정도면 충분하겠다.

하여간. 이곳에는 한권씩 천천히 재미있게 읽은 책을 올려볼 생각이다. 영화나 연극도 매한가지이겠지만 책이라는 것도 읽고 한두 달이 지나면 벅찬 감동은 스물스물 사라져버리고 그 이미지만 어렴풋이 남곤 한다. 따져보니 한 해에 스무권은 족히 읽게 되는데 스무 가지 감정을 매번 잃는다는 것도 참 아쉬운 노릇이다. 그리하야 그때의 감상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게으른 책 읽기'의 존재의의이다.